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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와 가짜 구별하기

최혜진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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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12.20 15:04
  • 기자명 By. 충청신문
최혜진 목원대 교수
최혜진 목원대 교수

예술사에 있어서 원작이나 ‘진위’논란은 심심치 않게 있어 왔다. 예술작품의 고유성이나 유일무이함, 진실성이나 독창성 등의 권위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본 논란은 사진이나 판화 등이 유행하면서 점차 허물어졌고, 복사의 혁명이 이루어진 이후로는 원본과 복제의 경계마저 없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소위 ‘진짜’에 대한 소유권, 저작권, 독창성 등에 대한 권리를 찾기도 힘들어졌다. 저작권이나 상표권 등에 대한 법적 제재가 강화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 하겠다.

예술작품에서만 진짜와 가짜의 논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소위 명품이라고 하는 세계 유명 상품에 대해 한동안 혹은 지금까지도 ‘짝퉁’이 버젓이 소비되고, 명품에 대한 소비욕구를 무시할 수 없어 여전히 불법 가짜 상품이 생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짜이기는 하지만 ‘명품’이라는 원작의 명성에 기대어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고 하는 욕망은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타오른다. 이에 대한 반작용인지 소위 ‘명품’들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더 높은 금액, 더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벌이며 서민들의 접근을 통제한다.

진짜와 가짜에 대한 이야기로 ‘옹고집전’을 빼놓을 수 없다. 진짜 옹고집은 누구인가. 구두쇠에 인간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불건전한 사람이다. 병든 장모를 구박하는 것은 물론, 처자식을 돌보지 않으며,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우고 그저 ‘돈’만 아는 못된 졸부다. 이런 옹고집에게 어느날 도승이 나타나 시주를 부탁했다. 당연히 도승은 옹고집에게 매를 맞고 쫓겨났고, 지고 있던 배낭조차 빼앗기고 말았다. 도승은 옹고집이 과연 그러한 것을 보더니, 도술을 부려 허수아비로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집으로 보냈다.

집으로 들어간 가짜 옹고집과 진짜 옹고집 사이에 ‘진짜/가짜’의 싸움이 일어났음은 당연하다. 멀쩡한 진짜 옹고집은 억울하고 속이 타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 가짜 옹고집이 집안 가속들에게 자신과 꼭같이 행세를 하니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결국 진짜는 송사를 걸어 가짜와 함께 관가로 가서 진/가 논쟁을 이어간다. 그 결과야 우리가 모두 아는 것처럼 ‘가짜’가 승리하여 가족들과 집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해서 ‘가짜’가 ‘진짜’가 된 것일까. 진가의 소송에서 가족들과 사또가 시험한 것은 집안 내력과 가족의 대소사, 하인들의 일과 집안 살림들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니, 이에 대한 시험에서 설마 가짜가 더 많이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짜’ 옹고집은 그저 돈에만 혈안이 되어서 소소한 집안 살림이나 가계 내력, 가족들의 일상 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아무 대답도 못하고 진짜같은 가짜에 당하고 내쫓기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옹고집은 ‘진짜’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달은 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가짜는 다시 허수아비로 변했고, 가족다운 가족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아마도 가족들은 자신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옹고집이 진짜인 줄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짜가 나타난 순간, 자신들이 원하던 아버지, 남편, 주인의 모습을 지닌 가짜 옹고집을 ‘진짜’로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짜가 진짜의 행세를 하는 사람이나 물건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병폐가 심해진다. 하지만 진짜라고 주장하는 무엇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더욱 큰 병폐를 만든다. 더 나은 가짜가 있다면 그것이 ‘진짜’가 되는 날도 있다는 것을 옹고집전이 말해준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순간이다. 대선주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 되고자 열심이다. 하지만 매일 의혹과 거짓말, 근거없는 공약들도 늘어가는 것만 같다. 누가 ‘진짜’ 영웅인지 국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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