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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그리운 이름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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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1.03 15:0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추운 겨울은 사라졌는가. 겨울의 한가운데인데도 눈은커녕 영상의 기온을 보이고 있다. 어려운 이들에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계절이 제구실을 못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변화가 인간을 힘들게 할 거란 생각이 겁이 난다.

가장 큰 이유로 지금 세계를 강타하며 떠날 줄 모르는 코로나가 그 예가 아닐까. 무서울 정도로 퍼져나가는 확진자 수에 놀라며 매일 가슴 졸이는 날이 되고 있다.

요즘 중국 드라마에 빠져 사는 것 같다. 중국어 공부한다는 이유로 사극을 주로 보는데 어쩌다 현대극을 보게 되었다. 동양의 정서는 똑같은 걸까. 돈푼깨나 있는 집안에서 평범한 사람을 며느리나 사위로 들이려 하지 않는다. 내 자식은 잘나기도 하고 기업적 연줄로 서로 득이 되려 하기 때문일 거다.

한국 드라마에선 부잣집 도련님과 평범한 딸, 부잣집 딸과 평범한 아들의 결혼 반대는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인간의 품성을 보는 것이 아닌 조건을 보는 결혼 풍습은 부잣집들의 전유물인가보다. 돈 봉투를 내놓으며 이별을 강요한다. 그 소재가 등장하는 중국 드라마를 보면서 어쩜 저렇게도 똑같을까. 아마 동양만의 가족적 이기주의적 사고란 생각이 든다.

서양 드라마를 보면 정말 자유롭다. 결혼과 이혼이 자유로워서일까. 부모의 반대는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예전에야 서양에도 노예제도로 인한 불협화음은 있었겠지만 요즘 보면 결혼은 당사자 간의 문제지 부모가 어떤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다.

며칠 전, 결혼한 아들에게 이혼을 요구한 엄마가 아들에 의해 생명을 달리한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그 집안 사정이야 잘 모르지만, 대화가 단절된 느낌이 든다. 이유가 뭐든 간에 엄마를 살해한 아들을 이해할 수 없다. 훗날 엄마를 부르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후회한들 이미 함께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을.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에 찡한 그리움으로 눈물이 솟구치는데.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멍해지고 목울대가 떨리는데. 어떻게 서로에게 그런 형용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단 말인가.

엄마로 불리기 시작한 지 41년째. 내가 엄마라 불릴 때 내 엄마는 먼 나라로 떠나셨기에 그리움이 더 쌓여있는 것 같다. 무던히도 엄마에게 버거웠던 딸. 여우 같던 내가 초등학교에 가서 남자애들하고 부딪히면서 서서히 왈가닥이 되어갔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은 늘 작은 소란을 일으켰다. 남자애들하고 지지 않으려고 싸웠고 이죽거리며 빈정거리는 여자애에겐 주먹을 날렸다.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기에 모르셨다.

훗날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저런 계집아이가 공부하면 무엇하냐며 책을 불에 던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책을 꺼내려 하지 않았다. 그 애가 먼저 시비 건 것이기에 나는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사촌 동생이 책을 건져서 학기 내내 불에 탄 책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사과하지만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야단을 맞으면 절대 내 뜻을 굽히지 않고 엄마에게 맞섰던 것 같다. 여자이기에 몸가짐을 조심하라고 하신 건데 그때는 그게 잔소리로만 느껴졌던 것이다. 아마도 사춘기가 아니었나 싶다.

아버지만 좋아해서 아이 때부터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던 나. 언제고 어느 곳이나 따라다녔기에 엄마의 존재가 큰 줄을 몰랐다.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는 이미 내 곁에 없을 때였다.

정치마당에서 발을 못 빼는 아버지. 가정보다 바깥일을 더 열심히 하였던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 살림 꾸리시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때는 왜 엄마의 마음을 몰랐을까. 텃밭을 가꾸며 풀을 뽑다가도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나야 취미로 한다지만 엄마는 가족을 위해 일을 하셨을 것이다. 그 절망감에 당신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풀 한 포기를 뽑고 오이와 가지를 따고 상추를 씻다가도 엄마 생각에 눈물짓곤 한다. 생전에 잘못한 것이 너무 많아 죄송해서이고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회한의 눈물이다. 땀에 젖은 옷을 빨면서도 옷 한 벌 제대로 사 드리지 못한 불효에 가슴을 친다.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더니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내가 성인이 되고부터는 엄마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하소연도 하고 동생들도 내게 부탁하곤 하셨다. 오빠들이 있는데도 딸이 더 편안했는지 당신이 먼 길 떠날 것을 아셨는지 나만 결혼하면 걱정이 없다고 하셨다. 대가 찬 응석받이 딸이 안 미더우셨나. 엄마가 먼 나라로 가신 후에야 그 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누구나 엄마 하면 가슴 시린 단어지만 생전에 잘하지 못한 불효녀이기에 더욱 가슴이 저리다. 이렇게라도 엄마를 생각하고 그리는 마음이 더 아프다.

내가 할머니가 되고 보니 엄마에게 내 딸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아쉽다. 일 년만 더 사셨어도 철부지 딸이 낳은 손녀를 안아보고 가셨을 텐데. 주변에 장수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우리 엄마도 살아계셨더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아버지만 좋아한다고 가끔은 눈을 흘기시던 엄마. 당신에겐 늘 철부지였던 딸이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고 하늘에 대고 소리쳐본다. 다음 생에 만날 수 있다면 안아드리며 사랑한다고 큰 소리로 말해야겠다. 애굣덩어리였던 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투적이고 남성화된 성격에 쑥스러워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말 “엄마 사랑합니다.” 허공에 대고 크게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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