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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세는 나이. 아는 형님.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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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1.11 14:2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유독 우리나라에서 민감한 문제가 있다. 나이다, 해가 넘어가며 떡국 한 그릇과 나이 한 살을 연관시키며 그렇게 지구 생일에 본인 나이를 얹는다. 그래서 2021년 12월 31일생 1개월은 한국 나이로 이미 두 살이다. 동아시아 3국과 베트남 등에서도 세는 나이(East Asian age reckoning)라던 셈법이 있었지만 이젠 한국만 남았다. 한국식 나이셈법은 꽤나 유명하다. 한류문화가 퍼지며 덩달아 구글에서도 Korean age Calculator 라는 한국식 나이를 계산해주는 사이트까지 나타났다. 슬그머니 태아가 뱃속에 있을 때를 인정해주는 거라고 에둘러 말해보지만 그저 궁색하다.

한국식 나이 문화는 또 다른 특징으로 다가온다. 바로 나이로 관계과 어법이 바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상팔하팔 (上八下八) 이라 하여 위. 아래로 8살 차이까지 폭 넓게 교우를 맺었고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친구사이로 유명한 오성과 한음도 5살 차이였다.

비엔나 극장시절, 함께 공연하던 이탈리아 배우는 당시 장인어른과 동갑이었는데 동양의 경로사상을 매우 높게 평가했었다. 그럼에도 통성명 후 무대작업에 들어가자 배우는 내게 경어체가 아닌 평어체를 쓰도록 요구했다. 이탈리아어와 불어 등 라틴어족은 우리말 존비어와 비슷한 경어체가 있어서 수직적인 관계에서는 분명 경어체를 쓴다. 그런데 그 배우는 협업과정 중에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평어체로 쓸 것을 요구했다. 당시 이태리 노배우는 협업관계에서는 경어체가 의사소통을 오히려 방해한다고 했다. 일의 진행과 아이디어 개진에서까지 경어가 들어가면 어리거나 경험이 적은 사람은 그 과정에서 꼭 필요한 말을 못하게 될 수도 있고 진행에도 방해요소로 작용한단다. 그래서 오히려 초심자들이나 어린 사람들이 문제의 맥이나 해결점을 더 잘 짚어낼 때도 많은데, 경어를 강요받으면 자유롭게 말하는 분위기까지 가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입을 다물도록 요구받는 경우도 생긴다 했다. 그렇게 장인어른 또래던 배우와는 지금도 반말로 소통한다.

국립음악원 풍경도 비슷했다. 음악원이라는 특성상 현악기 파트나 피아노 쪽에는 적게는 12살 아이부터 서른 세살 건축학도 첼리스트도 있었다. 프랑스로 순회 공연때 기억나는 일화로 현악 합주 중에 17살짜리 바이올린 수석이 서른셋 첼리스트와 악상으로 토론하다 약간 면박을 주었는데 첼리스트는 미안하다며 그 즉시 주법을 수정했다. 면박이라고 해도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당시 필자에게는 굉장히 충격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었다. 아마 그 런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의도의 좋고 나쁨, 오케스트라 내에서의 위치를 막론하고 둘 중 하나에게 인성 혹은 성격에 문제가 있다거나 불편한 상황으로 여기게 된다. 이쯤 되면 등장하는 뻔한 클리셰들이 떠오른다. ‘아무리 그래도 삼촌뻘한테’. 혹은 ‘바보처럼 조카뻘 어린애한테 핀잔이나 듣고 않았네’ 등등 수근거리거나 후폭풍이 닥친다. 아니면 소소하게 앙금을 켜켜이 쌓아두고 곱씹던지.
그런데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연주장을 벗어나선 또 삼촌 조카뻘로 다정히 지냈다. 그 이후로 쭉.

귀국 후, 공연장에서 연주자들끼리 통성명을 하고 이런저런 얘기 끝에 학번이 나왔다. 공교롭게도 같은 또래였던 연주자들이어서 반가움을 표하자 한 연주자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그런데 저는 빠른(년도)에요”
예능 프로그램에선 빠른생일과 몇 년생 또래라는 말로 흔히 ‘족보’가 얽힌 선후배와 친구사이라는 연예인들 토크도 봤다. 그러나 그들이 구태여 ‘빠른’이나 ‘또래’라며 나이들은 티를 내고 싶었을까. 분명 인생의 어느 궤적에선 그로 인해 불편했거나 손해를 느꼈으니 방어기재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친구는 곧 동갑을 뜻하게 된다. 나이가 다르면 친한 언니 오빠가 되며 친구와는 다른 관계설정이 들어간다. 오죽하면 ‘아는 형님’ 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을까
형·동생/존댓말·반말의 논란은 좋고 나쁨을 떠나 어느덧 수직과 수평을 경계 짓는 요소로만 굳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필자 또한 학창시절에 나이와 학번 문화를 굳세게 신봉했던 전력이 있어 수많은 반증과 부작용을 겪으며 스스로 반성하고 경계를 허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이와 존비어가 어느 순간 인간관계보다는 기수문화와 서열정리로 굳어지고 있는 상황이 씁쓸하다, 경로나 존대가 빠진 기수와 서열은 상명하복만을 불러온다. 장단점이 있고 문화차이도 있다. 다만 이로 인한 폐단은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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