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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검역 일번지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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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2.07 13:4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새 달력을 걸어두고 희망에 부풀어야 하는데 멍하니 달력의 숫자만 보고 있다. 계절이 바뀌어도 감각이 둔해지는 느낌이다. 세계인을 공포로 몰아넣은 역병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음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생활에 머리가 텅 비어가는 것 같다.

거리두기 강화가 2주일 더 연장한다고 한다. 생활 방역을 하니 코로나 감염자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나온다. 강화하면서 감염자 숫자가 조금 줄어든다고 좋아했더니 다시 오르막이다.

검사소를 늘리고 부스터 샷 접종을 하라고 독촉이다. 우리 부부는 질병관리본부에서 문자가 오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가서 추가접종을 했다. 외출은커녕 같은 마을 사람과의 접촉도 꺼려야 하는 상황이 힘들긴 하다. 손님이 오면 반갑긴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이 앞선다. 역병이란 이런 건가 보다.

옛날에는 역병이 돌면 마을을 폐쇄하고 사람 간에 왕래하지 못 하게 했다. 하늘과 바닷길, 땅의 길이 모두 열려있는 지금에야 폐쇄란 말은 옛말일 뿐이다. 해외에서 입국하는 확진자도 줄어드는가 싶더니 변이바이러스로 다시 늘고 있다.

손녀가 태어난 지 어느덧 10개월이 지나고 있다. 유독 아이를 좋아하는 동생은 오고 싶다고 몇 번이나 전화가 왔는데 당분간 오지 말라는 딸의 말에 애가 탄다고 했다. 오고 싶어 안달 난 동생은 3차 백신을 맞고 가면 안 되냐고 했지만 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런 시기에 오라고 할 수도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손녀를 키우고 있기에 역병의 숫자는 나를 민감하게 한다. 외출할까 말까, 마트를 갈까 말까, 숫자의 많고 적음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조카딸이 결혼할 사람을 데리고 온다고 했다. 검사하고 오라는 말에 정말 방문하기에 문턱이 너무 높은 집이란다. 조카사위 감은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조카딸은 자가 진단키트로 검사하고 온단다. 동생은 휴일이라 약국이 문을 닫았다며 진단키트를 살 수가 없어 못 온다더니 수소문해서 자가 진단키트를 구해서 검사하고 음성 나온 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왔다. 국가정책보다 더 엄한 집이라며 웃는다.

어른들이야 견뎌낼 수 있다지만 아기야 어떻게 견디랴. 뉴스에서 신생아가 걸렸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가 이럴진대 딸은 더 하겠지. 이런 상황이 너무 오래되니 사람 대하기가 겁나서 집으로 오라는 말도 못 한다.

변이에 변이를 거듭할수록 코로나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것 같다. 강화된 거리두기로 이제 줄어들려니 했는데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세계 현황을 보면 확진자 수가 적은 나라가 있다. 그들은 어떻게 숫자를 줄였을까. 코로나가 시작됐던 중국은 발병이 시작된 곳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적은 숫자를 보이는데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사회주의 국가라서 그런가. 가까운 나라만이라도 덜 나오면 언젠가 소멸하리라는 바람을 해본다. 가까운 이웃 나라 든 먼 나라 든 줄어든다는 말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점점 늘어나는 숫자를 보면 커다란 돌덩어리가 가슴에 얹혀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지가 언제인가. 명절에도 제사에도 함께하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가족의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는다. 얼굴 마주 보고 표정을 나누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마스크 속에 감춰진 표정을 알 수가 없다.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마스크를 벗으면 누군지 모른다는 말에 마음에 상처 구멍이 생긴 것 같다.

해가 바뀌고 새 달력이 걸렸건만 세상 날씨는 매우 흐림이다. 기업의 가동률이 떨어지니 오염이 줄었다는 데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들 힘들어 못 살겠다고 아우성인데 거리두기를 강화해야만 하는 정부도 참 고민이 많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다. 직업을 찾기도 힘들다 한다. 문을 닫는 소상공인들이 많으니 당연히 실직자도 많아진다. 연예인들도 설 자리가 없다며 한숨이다. 남편 회사도 잠정 휴업이다. 2년을 그렇게 했으니 수입 없는 상황에서 주주들은 운영자금을 주머니에서 꺼낼 수밖에 없다.

거리두기를 강화하니 소상공인들이 힘들고 생활 방역으로 돌리자니 확진자 수가 너무 많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도 안됐고 살기 어려워서 우는 서민들도 안타깝다. 어린이집 아이도 초등학생도 감염자가 늘어난다고 하니 점점 더 걱정된다.

요즘 태어난 아기들은 낯을 많이 가린단다. 사람을 만날 수가 없으니 낯가림이 심할 수밖에. 손녀의 친조부모가 아기를 보려고 왔다. 그들 역시 PCR 검사를 하고 아기를 안아볼 기쁨에 한달음에 달려왔건만 돌아갈 때까지 낯가림하는 아기를 안아보지 못하고 말았다.

지나가다가 커피 한 잔 달라며 초인종을 누르던 이웃. 차고와 컨테이너에 그림과 시를 적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 보라고 했더니 집주인이 궁금하다며 초인종을 누르던 사람. 언제든 들어와 차 한잔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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