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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삶의 공동체와 민속의 중요성

최혜진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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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2.21 14:1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최혜진 목원대 교수

올해는 설이 양력 2월 1일이었다. 날짜가 함께 걷게 되니, 정월 대보름이 2월 15이었다. 정월 대보름은 우리 민족이 설보다 더 큰 축제로 여겼던 성대한 민속의 보고(寶庫)였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대보름이 되면 한바탕 마을에서는 축제가 벌어지고, 이제 봄의 생기를 받으며 슬슬 농사 차비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정월 대보름은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시기인 동시에 농사 전 가장 성대하게 벌이는 놀이날이었다.

이 대보름의 유래는 ‘삼국유사’의 ‘사금갑(射琴匣)’조 이야기에서 나타난다. 신라 임금 소지왕(479-500)이 정월 대보름에 천천정으로 행차하다가 쥐가 나타나더니 까마귀를 따라가라는 말을 한다. 소지왕은 신하에게 명하여 까마귀를 따라갔고, 연못가에서 돼지싸움을 보던 신하는 까마귀를 놓치게 된다. 이때 연못에서 노인이 나타나 봉투 하나를 주며 “이 봉투를 열어본다면 두 사람이 죽게 될 것이고, 안 열어본다면 한 사람이 죽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왕은 일관(日官)에 의견을 물어 결국 봉투를 열어보게 된다.

봉투 안에서 나온 내용은 ‘거문고 갑을 쏘라’는 것이었다. 왕은 거문고 갑을 쏘았고, 그 안에 숨어있던 왕비와 중은 죽고 말았다. 이들은 왕을 해치려고 숨어있던 차였다. 이 일로 말미암아 왕은 매년 정월 쥐와 돼지, 까마귀가 들어있는 날에는 모든 행동을 삼갔으며, 정월 보름을 까마귀의 기일(忌日)로 정해 찰밥으로 까마귀에게 공양하는 풍습이 생겼다. 이후로 대보름에는 찰밥과 나물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대보름의 유래가 왕을 위협하는 세력을 동물들의 도움으로 물리쳤다고 하는 데서 이루어졌다니 매우 흥미롭다. 쥐와 까마귀, 돼지 등이 등장하여 서출지(노인이 나온 연못)를 안내하였고, 결국 왕의 안위를 도모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 신라는 불교 전래에 대한 반대 세력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당대의 토속신앙과 불교 신앙이 갈등하고 충돌했음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우리 민족이 고대부터 동물, 산신 등의 신앙을 가지고 그들을 매우 신성시했음을 알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오랜 기간 삶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연은 숭고와 신성의 대상이었다. 쥐 한 마리, 까마귀의 소리조차 허투루 듣지 않고 생명을 귀하게 여겼으며, 산에서 주는 혜택을 산신에게 표하기도 하였다. 자연은 극복하고 파괴하고 정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조화롭게 공생해야 할 존중의 대상이었다. 그러한 생태적 환경과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 이 유래담이기도 하다.

현대사회 속에서도 아직 마을공동체 정신과 신앙이 남아있어 우리는 대보름 축제를 뉴스로 접하곤 한다. 도시사회에서는 낯선 이 자연 속 마을공동체의 삶은 ‘함께’의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산이 높은 마을에서는 여전히 ‘산제’ 혹은 ‘산신제’를 모시는 행사를 하기도 하며, 주민들이 협심하여 큰 나무로 장승을 깎고 마을 어귀에 세우며 한 해의 안녕과 평안을 빌기도 한다. 이러한 전통은 나무 하나, 산속 풀 하나도 귀하게 여기는 자연 친화적 사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풍속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이 몇 년간 계속되면서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일 수 없으니 행사도 축소되거나 사라져 가고 있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지역별 마을신앙조사 보고서를 발간하는 중이다. 올해는 대전, 세종을 포함한 충청지역 마을신앙조사가 이루어지는 해이다. 마을신앙이란 예전 각 마을공동체에서 함께 집단으로 이루어왔던 토속신앙이나 제사 등을 말한다. 마을마다 그것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어 오고 있어서, 우리 민속의 형태가 삶의 현장마다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귀한 자료가 된다. 하지만 조사 보고서를 만드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일은 어서 코로나 시대가 마무리되고 마을공동체의 화합과 축제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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