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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화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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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3.07 13:48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3월이 되었지만, 영하의 날씨에 봄을 느낄 수가 없다. 역병만큼이나 물러가기 싫은 겨울이 우리 곁에서 떠나길 거부하나 보다. 작년에 이어 올해의 삼일절 행사도 간단하고 비대면으로 치러졌다. 매일 확진자 수를 확인하며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다. 나는 화를 많이 갖고 태어났나 보다.

긴 역병에 마음마저 해이해지는 것 같다. 장에 갔더니 알만 한 분이 노 마스크다. 왜 마스크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괜찮단다. 그러면 안 된다고 빨리 쓰라고 했지만, 그냥 지나간다. 아기가 오고부터 더 겁이 많아지는데 점점 무디어져 가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언제나 마스크에서 자유로워지려나.

나라 잃은 아픔을 어려서부터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고 자란 나는 일본을 미워하며 자란 것 같다. 일본제품을 쓰는 것은 매국이란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숙제가 산재해 있는 일본과의 관계. 답답하게도 끝없이 줄다리기만 하는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멀기만 한 나라 일본.

지난해 삼일절에 아침마당에 손님으로 나온 김진홍 감독은 우리 국민이 잘 모르고 있는 일본의 숨겨진 만행을 알리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삼일절을 되새기는 시기라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박힌다. 일본 강점기 시절 일본은 강제 노역을 시키려고 많은 조선인을 데리고 갔다. 많은 조선인이 징용으로 끌려가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귀국선에 올라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가기 위해 우키시마호에 올랐다. 부산으로 가기로 했던 그 배는 일본의 어느 항구에 정박하고 폭침을 당해 침몰하게 됐다고 했다. 우키시마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생존자 증언을 들어보면 배가 V자로 꺾였다는 것은 배 내부에서 폭발됐다는 것이라며 일본의 의도적인 행위라고 확신할 수 있다고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김 감독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보여주며 생존자 중 두 분만 생존해 계시고 나머지 분들은 고인이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부산으로 갔으면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었을 텐데. 귀국선이 폭발로 조선인들이 희생되고 말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일본 나가시마 평화공원에 갔을 때 찾기도 어려운 한구석에 한국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비를 보고 화가 났던 기억이 났다.

때맞춰 분노를 조장하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수라는 램지어는 위안부는 매춘이라는 논문을 써서 세계 지식인들의 분노를 샀었다. 우리 국민이야 더할 나위 없이 화가 났다. 그런데 우리 국민 중에서 그 논문에 동조했다는 학자가 있다니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당장이라도 달려가 멍석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들이 램지어에게 메일을 보내 지지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이 쭉쭉 뻗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생존해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 마음은 어떨까. 그들은 어느 나라 국민인가. 역사를 모르진 아닐 테고 매국노의 후손인가. 또 화가 났다.

서울에 갈 때면 복잡한 도로를 벗어나 호수 둘레 길을 걷는 게 좋아 석촌호수를 자주 이용한다. 둘레를 산책 코스로 만들어 걷기가 참 좋다. 봄에는 벚꽃이 만발한 둘레 길을 따라 음악을 들으며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호수를 끼고 걷다가 2호선 지하철을 타기 위해 호수 둘레 길을 벗어나면 굴욕의 역사를 간직한 사적 제101호 삼전도비가 보인다. 원래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란하여 고립되었던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한 사실을 담아 세운 대청황제공덕비다.

당시 청 태종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서울에 침입하여 삼전도에서 진을 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를 포위 공격하여 마침내 항복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를 영원히 기념하려는 청 태종의 강요 때문에 세워졌다니. 화가 치민다.

왕자는 인질로 힘없는 백성은 노예로 끌려가서 굴욕을 당한 역사를 가진 나라. 35년간 나라를 잃어버리고 서러움과 아픔을 간직한 나라. 이젠 그 누구도 얕보지 못하는 나라의 국민이었으면 좋겠다. 삼일절이 되어서인가. 역사의 상흔들이 가슴에 들어와 화를 돋운다.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행사에서 우리는 이제 선진국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힘 있는 나라는 아닌 것 같다. 동계 올림픽에서도 무시하는 언행을 하는 중국에 한마디 따지지도 못하고 넘어가는 걸 보면. 선진국이면서 힘이 있다면 어느 나라도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 역시도 분단국인 우리를 도와준다는 핑계로 요구와 간섭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시기는 언제 오려나.

며칠 있으면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후보들은 날을 세워가며 선거운동을 한다. 좋은 말을 건네기보다 흠잡는 일에 열중이다. 자신만이 이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한다.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모습을 보며 화가 올라온다. 국민의 강한 권리는 투표다. 당선되고 돌변하는 지도자는 아니고 국민을 섬기는 지도자이길 바라본다. 3·1정신을 잊지 말고 정쟁을 떠나 국민을 사랑하는 대통령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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