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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은산별신제와 공동체 정신

최혜진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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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3.21 13:3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최혜진 목원대 교수

충남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는 오랫동안 전승되온 마을제의 전통이 있다. 은산별신제가 그것이다. 별신제 혹은 별신굿이라 불리는 이 제의는 마을신 외에도 다수의 신들을 모시고 대규모로 이어지는 대동적 성격이 강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굿이기 때문에 건강과 평안, 풍요, 화합 등 마을 전체의 소망을 기원하고 있다. 별신제가 이루어지는 시간도 길게는 일주일 동안 여러 제차(祭次)로 이루어져 있어 그야말로 축제적인 성격이 강하다. 올해는 3월 23일부터 28일까지 이루어질 예정이다.

은산별신제는 이미 오래 전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196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된 우리의 무형문화유산이다.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후기 역이나 시장의 발달에 따라 지금의 별신제 모습이 정립된 것이라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성립과정에서 장군신에 대한 유교식 제사와 무녀가 중심이 되는 상당굿 하당굿이 새롭게 중심적으로 부각되었다. 곧 은산별신제는 유교문화와 무속문화가 절충되고 화합된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백제부흥을 위해 싸웠던 비극적 영웅신, 즉 전쟁에 패한 장군들의 원혼을 위로하고, 군사적인 요소를 부각시켜 백제지역으로서의 위상을 만들어나갔던 것이다.

애초 마을 동제로 출발했던 은산별신제가 이처럼 백제의 패망과 그 장수들을 위로하는 대규모 별신제가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은산을 비롯한 충청권 지역민들이 공감하고 결속할 주제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지역의 역사적 비극, 국가 재난 상황에 대한 위로와 축원이 필요했고, 여전히 그 자리에서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현재의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일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 역사적 변천과정은 아마도 이러한 세속적 필요에 의해 변화되고 다듬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별신제 안에는 국가의 흥망성쇠 내력과 여러 신들이 등장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별신제에 참여하고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이라 할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별신제의 내용과 형식은 변화를 겪었지만, 그 안에 당대의 소망과 염원을 담아 신들에게 아뢰고 복을 비는 정신은 변함없이 유지된 공동체의식이기 때문이다. 곧 별신제의 근원에는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식과 기원이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마을, 생업,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생활문화가 이루어졌고,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룩했다. 그것은 ‘개인’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경제구조와 집단성이 강고했기 때문이다. ‘땅’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성은 ‘농촌공동체’ 사회로 자연스레 이행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정서’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정신은 ‘개인’이 대응하기 어려운 사회문제와 국가 재난 등에 대비해 사회보장제도의 구실을 하기도 하였다. 누군가 피해를 입거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마치 내 일처럼 도와주고 기부하는 일이 일상적인 문화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우리에게 더 이상 마을공동체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공간’이 사라진 시대에 ‘무형유산’으로 남아 우리를 일깨울 뿐이다. 과거 은산별신제를 통해 이루었던 공동체의 축제나 화합, 혹은 국가 재난에 대한 위로와 보상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로 이동되었다. 그러나 국가의 역할은 충분치 않다. 은산별신제에서 백제부흥운동의 전몰 장군들을 위로하는 의식을 재구성한 이유는 바로 국가가 해결해주지 못한 재난에 대한 공동체의 대응이자 스스로에 대한 위로였던 것이다.

은산별신제의 기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우리는 코로나 최정점의 위기에 있다. 또한 정권이 바뀌는 혼란스러운 시기이기도 하다. 혹자는 현재의 정권이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심판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땅’이라는 것은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역’과 ‘역사’ ‘정서’ 등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땅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구분해서는 화합이나 통합으로 갈 수 없다. 이 땅은 공동체가 함께 살고 함께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므로,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란다. 결국은 그것이 은산별신제의 기원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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