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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스님의 마음이야기] 내 운명의 주인은 누구?

보안스님 호주 시드니 보리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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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3.28 13:3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보안스님 호주 시드니 보리사 주지

누군가가 가끔 묻습니다. 우리들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냐고? 불교에서는 운명을 어떻게 보느냐고? 세상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길든 짧든 우리가 보고 느껴지는 것들이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생로병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스스로 삶에 관한 관심은 끊이지 않고 계속됐고 또 계속되고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죽음이라는 문제는 누구나 언제나 모든 질문 가운데 가장 빈도수가 높은 것입니다. 죽음을 연장하기 위해서 인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그때부터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투자해서 연구해 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전에는 불치의 병이라고 했던 여러 병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인간 승리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고칠 수 없는 병이나 인간의 능력으로 도전할 수 없었던 부분을 어떠한 위대한 존재를 내세워 자연의 힘에 스스로 무릎을 꿇고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또 어떤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우리가 가진 인간의 잠재능력을 키워서 많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죽음을 생각할 때나 삶의 미래를 생각할 때 과연 우리가 어떠한 과정을 거치는 가를 생각하게 되고 과연 그 과정이 미리 정해진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개척을 할 수 있는지를 일생에 한두 번 정도는 생각해 보는 것이 보통입니다. 생각하는 것들이 술술 잘 풀릴 때에는 의심하지 않지만 뭔가에 막혀서 답답할 때는 누군가에게 해답을 찾고자 하는 것이 우리 마음속에 가진 약한 부분들 가운데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답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주역(周易)이 동북아시아의 세상 돌아가는 것을 수학적이고 확률적으로 정리해 놓은 대표적인 것입니다. 주역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은 중국의 공자님입니다. 그 이후로 많은 사람이 주역을 이용해서 삶의 답답함을 풀어왔습니다. 그렇다면 1000년 전에도 같은 책이었고 올해도 같은 책입니다. 시대나 사람이 달라졌는데도 계속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들의 세계가 어떠한 규칙에 따라 돌아간다고 생각을 했을 때 가능하다고 봅니다. 과거에도 때가 되면 해가 떠올랐고 때가 되면 서산에 졌었고 오늘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렇듯이 세상에 어느 것도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그 규칙 속에서 변함이 없이 흘러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규칙 속에서 세상이 돌아간다면 우리들의 삶은 별 의미가 없이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세상의 한 부속품처럼 살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운명이 개척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말을 하건대 우리는 세상의 부속품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충분히 개척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자아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아의식 때문에 흘러가는 규칙 속에서 벗어나 보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것이 없었다면 동물처럼 아니면 식물처럼 그렇게 세상의 변화 속에서 발전이 없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인류가 생겨나면서부터 꾸준한 노력의 대가로 이 시대의 삶의 모습을 가져온 것이지 누가 갑자기 던져 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세상이 커다란 규칙으로 돌아갈 때 우리 인류는 자신을 개발하면서 또한 많은 것을 세상 속에서 찾아내고 변화 발전시켜 왔습니다. 인류는 스스로 운명을 바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류의 운명이 바뀐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서 크게 의문을 품지 않고 단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만 운명을 말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다른 곳에서 말하는 운명은 제쳐두고 불가에서는 어떻게 운명을 이야기하는지를 말하자면 운명은 인연(因緣)이고 업(業)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오늘의 결과는 어제의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고 오늘이 있으므로 내일이 있습니다. 그 씨앗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놓여있고 얼마만큼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나옵니다. 그 환경과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을 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업을 잘 정리하고 변화시키면 업이 바로 지혜로 바뀌어서 행복과 기쁨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헤매게 됩니다. 그래서 불가에서 운명을 이야기할 때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운명대로 살 수밖에 없고, 노력해서 바꾸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노력 정도에 따라서 변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잘 생각해 봅시다. 스스로가 지금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할 때 최종적인 결정을 누가 했는지를. 누구의 탓도 책임도 아닌 우리 자신입니다.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인 것이지요. 참선(불가의 수행 방법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는 것)을 할 때의 화두(참선할 때 던지는 의문) 가운데 하나가 ‘주인공아!’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주인으로 사는 것이 손님으로 사는 것보다 보람차리라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명을 바꿀 준비와 각오를 해야겠지요.

인생의 운전수는 바로 자신
목적지에 가는 것도
중도네 하차도
스스로의 선택
누가 그걸 간섭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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