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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점심 도시락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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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4.25 16:3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벚꽃이 지는 자리에 연둣빛 새싹이 나오고 아파트 단지 내 꽃잔디가 아름답게 만개했다. 걷다 보면 하얀 조팝이 반기고 철쭉꽃이 아름다워 한동안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봄은 이렇게 깊어 가고 있다. 짧은 봄날은 꿈처럼 왔다가 꽃멀미 만 남기고 언제나처럼 떠나려나 보다.

코로나 감염을 조심하느라 점심은 도시락을 싸 와서 먹고 있다. 젊은 직원들도 학교 다닐 때 생각도 나고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며 반응이 좋다. 각자 반찬을 가져오고 밥은 즉석밥을 이용해도 되니 번거롭지도 않다.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가장 좋은 반찬이 구운 김인데 한 봉지를 개봉하면 별다른 반찬 없이도 점심 한 끼 해결하기에 충분하다. 아이들 키울 때도 바쁜 아침에 김에 밥만 싸서 먹여 보내고는 했던 없어서는 안 될 아이템이었다. 또한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으로 먹지 않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거기에 단백질과 비타민이 많이 함유되어 영양분이 풍부하다고 하니 값싸고 영양가도 높아 최고의 반찬이다.

어릴 적 내가 살던 곳에서는 해우라고 불렀고 귀한 음식으로 제사를 지낼 때나 먹을 수 있었던 것이 김이다. 산에서 부드러운 소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솔 삼아 참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장작불을 땐 불씨를 이용 김을 구었던 기억이 새롭다. 대보름이면 주먹밥을 만들기도 했는데 김만 벗겨서 먹고 찰밥은 먹지 않아 어른들께 혼나기도 했다. 얼마 전 주간지 ‘시사 인’에서 조류학자 캐슬린 메리 드루베이커에 대해 읽으면서 귀한 김이 어떤 연유로 우리 식탁의 단골 메뉴가 될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김은 조선시대에는 왕에게 진상하던 식품이었는데 김 1첩이 성인 남성 열 명의 군포와 맞먹을 정도였다고 하니 정확히는 가늠이 되지 않지만 귀한 식품에는 확실했던 것 같다. 세계적으로 80여 종의 김이 있고 우리나라도 20여 종의 김이 존재한다고 한다. 나는 그 중에 파래김을 좋아한다. 김이 대중적으로 되기까지 영국 과학자의 노고가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조류학자 캐슬린 메리 드루베이커라는 여성학자의 노력과 연구 결과로 인공 재배가 가능해지며 대량 생산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여성이 학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술기관이나 대학에서 결혼한 여성은 채용하지 않았는데 그는 보수를 받지 않고 연구를 하는 명예연구원이 되어 홍조류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고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굴이나 맛조개에 파고 들어가는 분홍빛 곰팡이를 발견했고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 균이 김을 인공으로 만들 수 있는 종자였다. 1948년 일본이 태풍으로 김 양식이 파괴되었을 때 캐서린의 논문을 토대로 인공파종기술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맛있고 영양가 가득한 김을 맘껏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내일은 봄나물 가득한 도시락과 구운 돌김을 가지고 갈 생각이다. 주말 동안 지인이 집으로 초대했다. 집 주변에 있는 밭에 봄나물이 반가웠다. 방풍나물, 오가피나물, 논둑의 민들레, 쑥까지 두루두루 뜯었다. 나물을 먹겠다는 생각보다 봄 햇살을 받으면서 들판에 앉아있다는 것이 더 행복하게 했다. 잠시 앉아있었는데도 봄나물이 한 바구니다. 예전 같으면 데쳐서 얼렸을 것인데 도시락 반찬으로 쓰려고 신문지에 꽁꽁 싸서 냉장고에 보관했다. 봄내 꺼내서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내일은 봄 향기 가득한 나물과 김을 곁들어 먹는 행복한 점심 식탁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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