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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스승의 날을 기리며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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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5.15 16:4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마른 가지에 연둣빛 잎이 고개를 내민다. 하나둘 내민 이파리가 모여 가지를 칠한다. 여린 잎들이 나뭇가지에 색을 입히고 한껏 기지개를 켤 즈음 우리는 초록을 머금은 나무를 보고 ‘푸르다’라고 한다. 푸른 것은 자연에만 있지 않다. 청렴한 태도, 차가운 이성을 지키는 인간의 정신 또한 푸르다. 선조들은 푸른 이성을 지키려 끊임없이 학문에 매진하고 수양을 거듭했다. 나 또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서도 조상의 숨결이 묻어나는 선비의 정신으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부족함을 달래며 학창 시절을 지켜주시던 은사님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는다.

내가 늦깎이의 나이로 만학을 할 때 일이니 벌써 34년 전의 일이다. 수학이나 물리학이 어려워 매번 곤경에 빠지기 일쑤다. 공부하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누구에게나 물어볼 수도 없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다. 그럴 때면 수시로 전공과목의 고등학교 은사님들을 찾아가 성가시게 해드리곤 했다.

한 번은 건축구조에 관한 문제로 밤을 새우다가 풀리지 않아 고등학교 때 건축설계를 가르치시고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선생님을 찾아갔다. 어찌나 문제가 난해했던지 선생님도 쉽사리 문제가 풀리지 않아 골몰하신다. 직원들은 업무로 연실 방문을 노크하고 있어 은근히 불안하기도 하고 눈치가 보였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사무실 업무부터 처리한 후에 풀자고 말씀드렸으나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연거푸 피우시는 담배꽁초가 재떨이에 수북이 쌓여만 갔다. 진한 커피도 몇 잔을 드시면서 골몰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야 가까스로 문제가 풀렸다.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선생님의 모습이 왜 그리도 멋지던지 존경심이 절로 난다.

나는 늘 대학교에 다니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다가 만학을 했다. 그러니 누구 못지않게 향학열에 불탔다. 선생님은 그런 내가 가상하게 보이셨던지 늘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셨다. 이런 스승님들을 평소에 모시지 못하다가도 스승의 날이 가까워져 오면 종종 선생님들을 함께 모시고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은사님이 한 분, 두 분 돌아가시고 병환 중에 계시니 안타까울 뿐이다. 더욱이 올해에 맞는 스승의 날은 은사님을 모시고자 하나 모실 은사님이 안 계시니 마음이 아프다.

마침 아름다운학교운동충북본부에서 여러분의 교육자들을 모시고 아름다운 학교 운동을 이어가며 최근엔 사회공헌 활동으로 교육자료를 만들어 봉사하고 있다. 이분들이야말로 교육의 산증인들로 함께할 수 있어 즐겁다.

내가 건축을 전공하고 강단에서 대학생들을 교육하는 것도 보람된 일이다. 생동감 있는 말씨, 풋풋한 몸짓에서 피어나는 웃음, 반짝이는 눈, 생각만 해도 기쁨 그 자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즐거울 수만은 없다. 소수의 학생이긴 하지만 소극적이고 좌절하는 모습을 대할 때는 깊은 고뇌에 빠지기도 한다.

교육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서로 존경과 사랑으로 진행될 때 가장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불신하면 교육은 공염불이 되고 만다. 교사에게는 교직관을 강조한다. 교직관이란 교직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틀을 의미한다. 교사는 직업인이기도 하지만 모두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성직이다. 그러나 소수이긴 하지만 다소 부족한 소양과 급한 성격, 교사답지 않은 언행으로 학생들이나 학부모에게 상처를 주어 비난을 받는 교사가 이따금 매스컴을 탄다. 성직관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교사들이다.

며칠 전 신문 방송을 통해 우울한 기사를 만났다. 정년을 6개월 남긴 교사가 천방지축인 4학년 학생의 지속적인 일탈행동을 지도하는 과정에 그만 참지 못하고 욕을 했다가 공개 사과를 하고, 학부모의 항의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했다. 그리고 초임 교사가 ‘김정은도 무서워서 쳐들어오지 못한다’라는 농담의 주인공인 중2 담임을 맡고, 생활부를 맡아야 한다는 기사, ‘교권 침해 선생님을 지켜라’를 읽으며 학교 현장의 어려움을 보는 듯하다. 학생 인권이 회자하면서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려는 교사의 교육권이 침해를 받고 방임하거나 회피하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학생들에게 지식뿐만 아니라 풍부한 삶을, 미래를 열어줄 희망을 안겨주겠다는 각오로 교단에 섰다가 좌절하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교사들은 업무가 많다. 가르치는 일은 기본이고 학생들의 생활 관리, 학급 운영, 교실 환경 꾸미는 일 외에도 시험 출제 및 채점, 생활기록부 작성, 공문 처리 등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럴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상대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특히 저학년 담임일 때 급식지도는 교사의 점심시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학년의 경우는 젓가락질을 가르쳐야 하고 요구르트 뚜껑도 따줘야 하니 말이다.

세상은 가끔 철밥통이라 불리는 교사들을 부러워하고 질시한다. 무한 경쟁에 시달리는 자신들과 달리 편안한 직업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장기 학생들이 일으키는 각종 돌발 상황을 관리해야 하고 학부모와의 마찰 등은 교사들을 지치게 만든다. 특히 상식 밖의 학부모를 만나면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막무가내식 요구나 이해 불가의 교육이론을 나열하며 들이대는 학부모를 대한다는 것은 고충 중의 고충이다. 또한 업무도 과거보다 전산화가 되어 행정절차가 간소화되어 간다고 하지만 수시로 내려오는 공문에 보고할 것들은 산더미처럼 쌓인다. 근무시간 내내 쉬지 않고 일을 해야 업무를 감당할 수 있다. 교사에게 가르치는 일은 투쟁인 동시에 정열이자 사랑이다.

교육은 교사가 한평생을 노력해도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의 목표에 도달하기 어려운 하나의 예술이다. 여러 악조건에서도 교사들이 위로를 받고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직도 교사를 선생님으로 바라봐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스승은 학생에게 가르침으로써, 그리고 제자는 배움으로써 진보한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의미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무명 교사 예찬 시에서 ‘유명한 교육자는 새로운 교육학의 체계를 세우나, 젊은이를 건져서 이끄는 자는 무명의 교사로다’처럼 자신들의 복지나 승진, 출세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교단을 지키며, 학문에만 전념하는 교사들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자임이 틀림없다.

최근에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낮아져 낙담 속에 교단에 서거나 교단을 떠나는 교사들도 많다고 한다. 스승이 없는 사회는 곧 불행이다. 언제든지 찾아가 뵐 수 있는 스승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생각해보면 스승의 존재야말로 그 가르침을 받들고 실천하는 제자가 세우는 것이다. 차제에 스승의 날은 아름다운 날이고, 소중한 날이다.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과 제자들과의 뜻깊은 만남이 이루어지고 제자 사랑, 스승존경풍토가 높아지길 소망한다.

오늘따라 많은 생각에 잠기며 그간 모시던 은사님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허전하고 마음이 아프다.
“스승님 영원히 사랑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존경하며 추모의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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