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중도에 장애인이 된 친구들인데,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되다 보니 여러 가지 공통소재가 있기도 하고 모두 늦깎이 공부를 하느라 박사 논문에 관한 얘기가 전반적이다. 한 친구는 골수염으로 다리를 절단하였다. 한 친구는 하지 소아마비로 중증 장애인이다. 나도 어쩌다 사고 절단 장애인으로 지내게 된 중증 장애인이다. 이렇게 셋이서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게 되었다.
휠체어를 다리 대신 사용하는 중증 장애인이다 보니, 생활하는 데 많은 불편이 따라 오는 건 당연한 말이겠지. 늘 다니던 길목에 있는 유명카페에 들렀다가 낭패를 겪은 일이 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친구가 화장실을 가겠다 하여 걸을 수 있는 내가 가서 직원에게 물으니, 1층에는 없고 2층에만 화장실이 있다는 거였다. 이런 낭패가 있나… 옆집 앞집을 둘러봐도 화장실은 찾을 수 없고 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이를 어쩐다지… 일단 나가자 하고 급히 짐을 꾸리기는 해도 마음만 바쁠 뿐이지 행동이 따라오지는 못했다. 급히 용변을 해결해야 한다. 한편으로 야속하기도 했다. 화장실은 꼭 2층에만 있어야 하는가?
친구가 차에 타면서 미안해하는데 내 마음은 더 움찔거렸다. 휠체어를 접다가 괜히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화장실 위치를 알아보지 않고 카페를 선택한 내가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장애인들은 항상 주의해야 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을 어찌 모르겠는가. 이런 곳에서도 불공평한 처우는 요소요소 존재한다. 같은 사용료 내고 화장실도 사용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은 카페로 기억 할 텐데 말이다. 친구가 하는 말이 재미나다. 스로 시작하는 카페는 갈 수 없는 나라.
이런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는 화장실이 대체로 2층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라웠다. 지난달 기고문에는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이야기를 썼는데, 이번에는 하지 장애인들의 카페 활용에 대한 실제 현실을 경험하고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걸을 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카페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허리 협착이 있거나 디스크로 고생하는 환자들, 그 외 다리를 다친 사람들도 사용은 힘들 것이다. 1층에 화장실을 설치하는 데 문제가 있더라도 설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람의 생각은 바꾼다고 해서 바로바로 바뀌는 것일까? 왜 장애인들의 편견과 차별이 생긴 것인지, 그 편견과 차별이 장애인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사회에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장애인도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다면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 Free)에 맞춰서 승인되었을 것인데 차별에 대한 아쉬운 생각은 여전하다.
김지혜 작가의 저서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으려는 노력보다 비장애인이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