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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베토벤 10번 교향곡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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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6.14 15:5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음악계엔 유명한 ‘9번 교향곡의 저주’가 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악성(樂聖) 베토벤이 9번 합창교향곡을 작곡하고, 10번 교향곡의 스케치만 남겨놓고 죽고 난 후, 이후의 작곡가들도 10번 교향곡을 작곡하기 전에 사망한다는 징크스다.

교향곡은 모든 작곡가가 꿈꾸는 기악곡의 끝판왕이다. 주제를 발전시키는 형식의 변화와 구성을 정의한 소나타 형식이 완성된 이후부터는 모든 작곡가는 자신만의 관현악법과 음악 세계를 나타내는 종합 완성작품으로서 교향곡을 작곡했다. 당대의 유명 작곡가들도 교향곡을 작곡하는 것을 일생의 숙원으로 여기며 단 하나의 교향곡도 작곡하지 못한 경우도 있고, 프랑크나 베를리오즈 같은 작곡가들은 평생 단 하나의 교향곡만을 남길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 심지어 브람스의 경우는 그의 1번 교향곡을 21살에 구상해서 43세에 완성해 21년이나 걸린 교향곡으로서 세상에 선보였다.

베토벤 이후 낭만 시대 작곡가들은 더욱 발전된 악기들과 화성법으로 짜임새 있는 교향곡을 작곡해내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그러다 보니 교향곡을 작곡할 정도의 경험과 숙련도가 쌓인 30대 이후부터나 손을 댈 수 있어 시작 지점도 늦은 데다, 가뜩이나 스트레스와 예민한 기질의 작곡가들의 수명도 길지 않아서 10개를 못 채우고 죽은 작곡가들이 많았다.

베토벤을 동경했던 슈베르트도 9번 교향곡을 완성하고 10번 교향곡의 스케치만 남겨놓은 상태에서 31살에 요절한다. 뒤를 이어 안톤 브루크너, 드보르자크 같은 작곡가들도 9번을 끝으로 사망하다 보니 음악계에서는 슬슬 ‘9번의 저주’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구스타프 말러 같은 경우는 이를 피하려고 9번째 교향곡을 번호 매기지 않고 ‘대지의 노래’로 이름 붙이며 슬쩍 넘어가고 싶어했을 정도로 유명한 저주였다. 말러 본인도 스스로 ‘위대한 작곡가들은 9번을 넘기지 못한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이후 9번 교향곡을 성공적으로 완성했지만 이마저도 말러 생전엔 초연되지 못한 채 10번 교향곡의 스케치를 남기다 말러도 세상을 떠난다. 이 정도 일화를 갖고 있으니 후세사람들은 베토벤이 살아있었더라면 과연 10번 교향곡이 어떤 음악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계속 키워왔다.

코로나로 전 세계 음악계가 허덕이던 무렵, 작년 10월에 베토벤의 고향인 독일 본에서는 일대 사건이 있었다. 음악사가, 음악학자, 작곡가, 컴퓨터 과학자들이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작업의 하나로, 베토벤 10번 교향곡을 ‘만들었다’

이들은 인공지능 AI에 베토벤 작품들을 일단 학습시키고, AI가 뱉어낸 패턴들을 다시 골라서 그중 베토벤 작법과 가장 어울리는 것들을 다시 입력시키는 식으로 학습을 시켰다. 그리고 중간 과정으로 AI가 작곡한 파트들과 베토벤 작품 중 일부를 추려 피아노로 연주한 후, 음악학자들과 평론가들에게 구별하는 실험을 거쳤다. 그리고 아무도 그 둘을 구별해내는 걸 성공하지 못했다. 이제 프로젝트팀은 베토벤이 남긴 10번 교향곡의 스케치를 AI에 입력시키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물론 이 작품은 숱한 논란을 키웠다. AI가 남긴 작품에 인간의 영혼이 깃들어 있을 리가 없다.’부터 ‘가장 훌륭한 베토벤의 수제자가 있다면 이 AI일 것이다’라는 반응까지 각양각색의 반응들이 쏟아졌다. 이를 두고 열린 토론회에서 한 프로그래머는 ‘칭찬과 비판 모두 정당하다. 그러나 그 비판의 근거는 두려움이다’라며 마무리 짓는다.

최근 CF에서 각광을 받는 스타가 있다. 그리고 그 스타는 스캔들과 학폭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자사 광고 메인 모델의 스캔들과 학폭논란으로 어렵사리 제작한 광고를 폐기 처분해야 했던 광고주로서도 가장 안전한 모델, 로지라는 이름의 가상인간이다.

이제 우리는 가상인간의 영상매체를 즐기고 AI가 작곡한 베토벤 10번 교향곡을 감상하는 시대를 맞았다. 코로나를 겪으며 식당과 매장엔 직원 대신 키오스크가 그 자리를 메꿨다. 이세돌은 AI를 마지막으로 이긴 바둑기사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베토벤 10번 교향곡은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곡을 듣고 난 후의 감상은 각자의 몫이다. 그리고 거기서 두려움을 느낄지 새로운 지평을 엿보게 될지의 감성 또한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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