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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속도

이종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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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8.17 14:2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종구 수필가

길을 가다 보면 붉은색 동그라미 안에 숫자가 쓰인 것을 보게 된다. 이른바 자동차의 제한속도 표지판이다. 쓰인 숫자만큼 이상의 속도로 달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제한속도는 주변의 환경(학교, 노약자 통행)과 지형, 날씨 등을 고려하여 결정한다고 한다. 제한속도는 안전속도이다.

지난해부터 안전속도 50-30이라는 규정이 시행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50-30 시행으로 교통사고가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뉴스도 나왔다. 그렇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 규정에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높은 속도에 적응된 사람들이다.

속도는 ‘물체가 나아가거나 일이 진행되는 빠르기(표준국어대사전)’로 자동차의 빠르기를 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속도는 산업 혁명 이후 급격하게 우리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규정된 속도에 맞추지 못하면 퇴보되거나 탈락하기도 한다. 생산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있는 제품에 부속품을 조립하는 일꾼들은 앞에 지나가는 물건의 속도 맞추어 일해야 한다. 어찌 보면 사람이 공정의 한 부속품 같은 인상을 갖게 하기도 한다. 속도감에 중독되거나 일정하게 정해진 속도에 맞추어 일하다 보면 쉼을 잊는 짜인 삶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생긴다. 요즘은 그런 일을 로봇이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자칫 일자리를 로봇에게 빼앗기는 것 같은 서운함도 든다.

그러나 보니 세상일이 ‘빠르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마을의 쉼터에서 초등학교 5, 6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보았다. 대화의 주제는 컴퓨터의 빠르기였다. “‘기가’ 가 어떻고”, “‘메가’가 어떻고” 필자로서는 일아 듣기도 어려운 이상한 말을 하면서 자기 집 컴퓨터의 성능이 더 좋다고 우기는 모습들이었다. 정보처리 속도가 불과 몇 초에서 몇 분의 차이가 나는 것일 뿐 보통의 우리들이 사용하기에는 불편이 없는 일인데 그 정보처리 속도를 가지고 다투는 것이었다. 요즘은 핸드폰을 가지고 성능이 어떠니 저떠니 하고 있다. 모두 다 속도에 근원을 두고 있는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몸에 배어버린 현대인의 생각이다.

벌써 몇십 년 전, 우리가 해외여행 자율화 조치에 따라 동남아 등을 여행할 때 현지인들이 우리를 비꼬는 말 중의 하나가 “꼬레, 빠리빠리”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무엇이든 “빨리빨리”를 외치는 우리의 모습이 보여준 결과였다. 그 “빨리빨리”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기도 했다. 경제 성장의 가속화로 이젠 세계 7대 경제 강국이 됐고, 반도체 등 몇몇 제품은 세계 1위가 됐으며 이젠 우주 개발에도 발을 들여놓은 명실공히 선진국이 되었다. 그러나 그 “빨리빨리”가 남에게 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되어 우리들의 생활 모습을 경직시켜 버리는 부작용은 없었으면 좋겠다.

이제 잠시 틈을 내어 쉼 없이 달려온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며 여유를 갖는 모습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서 부산을 갈 때 경부 고속국도를 non stop으로 가는 것보다는 한두 번 휴게소에서 들려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여정을 살펴보는 여유를 갖는 느긋함이 있으면 좋겠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를 생각해 보면서 쉬엄쉬엄 감도 괜찮지 않은가?

여유는 긍정심을 준다. 갑작스런 폭우에 몸과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런 때, 음식이 좀 늦게 나오는 식당에서 화를 내기보다는 ‘내 것은 맛있게 요리하기 위해…’, 불법으로 끼어들기 하고 추월하는 운전자에게 불쾌감을 느끼기보다는 ‘저러다가 사고 나면 안되는 데라는 염려의 마음’을 갖는다면 내 심박 수는 여유 있게 낮아지며 몸속에는 엔돌핀이 높아질 것이 아닐까?

수해 복구에 땀을 흘리는 분들에게 감사하며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이런 때, 내 마음의 안전속도를 지키며 조금은 여유를 갖고 다가오는 가을의 청량감을 기다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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