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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그래도 가을이 온다

김일호 한국문인협회 세종시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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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8.21 15:3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일호 한국문인협회 세종시지회장

지난여름 오랜 날 참고 기다려 온 보람을 찾은 듯 조석으로 창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시원해졌다. 더러는 성질 급한 푸른 나뭇잎들이 벌써 떨어져 보도 위를 뒹굴기도 한다. 한여름 우거진 숲속에서 태어나 고작 며칠간 울고 가는 매미의 갈갈한 울음소리도 탁하고 짧아졌다. 때 없이 들이닥친 장마가 남기고 간 회색빛 구름의 양도 많아져 그늘이 되어주고 있다. 한바탕 예취기가 지나간 풀밭에는 먹거리를 횡재한 듯 작은 새들이 우르르 몰려와 입놀림이 부산하다. 그렇게 번잡하고 끈적거리던 여름이 거쳐 가는 길 위에 가을 그림자가 살며시 다가와 길게 누워 여유를 부리고 있다.

지난날 돌이켜 보면 어떻게 목숨 부지하고 힘들게나마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살아왔는지 기적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이제는 대유행의 정점을 찍고 우리 곁을 떠날 줄 알았던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재확산으로 확진자 수나 중증 환자 수, 그리고 일일 사망자 수의 기록을 연일 경신하며 평범한 일상마저 꽁꽁 묶어두었다. 마스크 속의 거친 호흡이 곧 막혀버릴 것도 같았던 힘겨운 나날이었다. 먹고 사는 생업이야 하루 이틀 쉬었다가 이어갈 수 있다지만, 비대면에 따른 인간사회 불통의 시간은 한밤중 같아 도무지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을장마라는 이름의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록적인 집중폭우로 인하여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고 망연자실해야만 하였다.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비참하기까지 한 수해 현장에는 각급 기관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앞다투어 찾아가 수해복구에 땀을 흘리고 있다. 추석 명절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지만 큰 피해를 본 영세 상인들이나 농민들 그리고 생활 정도가 몹시 어려운 취약층의 심정은 어떨지 가히 짐작할 수 있으며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자연재해이건 인재이건 돌림병이던 누군가의 잘못에서 비롯되었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사전 예방을 좀 더 확실하게 하였다면 없던 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피해는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무겁다.

안타깝게도 요즈음 정치가 실종되었다는 국민적 불만이 크다. 그뿐만 아니라 국리민복을 위한 최 일선에서 역할을 해야 할 정치인들이나 고위직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권리 주장만 목소리 높일 뿐 국민에게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책임조차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자신의 영달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사건건 갈등을 부추기거나 편 가르기를 서슴지 않는 일부 위정자들의 민낯을 바라보는 선량한 국민의 속은 이래저래 부글부글 끓어 폭발 직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은 가까이 오고 있다. 비록 자연재해와 감염병 유행의 영향으로 예전처럼 거두지는 못하겠지만, 결실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그토록 힘든 나날들 뿌리고 가꾸어 거둘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보다 값진 결실이 아닐까 싶다. 이쯤에서 콩 한 쪽도 나눈다는 선조들의 지혜로운 삶에서 공동체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봄 직하다. 경제 대국 세계 10위권인 우리나라 행복 지수가 OECD 37개 국가 중 35위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진정한 삶의 가치와 행복의 무엇인지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기 어려운 현실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가는 여름, 오는 가을 길에 우리라는 이름의 작은 희망이라도 나누면서 행복한 동행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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