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회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작품을 의뢰했다. 흔쾌히 행사에 동참해 주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작품이 없다는 핑계로 거절하는 회원들까지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시골에서 시를 쓰는 할머니 회원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분이 어느 한 날 이른 아침 전화를 주셨다. 출근 준비로 바쁜 와중에 시인은 수화기 너머로 ‘잘 안 들린다.’라는 말씀만 줄곧 반복하시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본인의 마음에 쏙 드는 시 한 편을 써 놨는데 전할 길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말씀이었다.
실로 그분은 음성 외곽 지역 산촌에 홀로 사시며 시를 쓰는 분이었다. 자식들은 모두 성장해 도시로 나갔고 지금은 혼자 지낸다는 말씀과 함께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는 하소연을 하셨다. 그 말씀이 어찌나 구구절절한지 잠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하니 그것이 뭐냐 되물으시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 옮겨적어 제출하겠다고 하니 그것도 어려우시단다. 그러면서 시 한 편은 꼭 내고 싶어 하셨다. 직접 댁으로 원고를 받으러 가려니 나는 직장을 나가야 하고 그야말로 난감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중에 문득 친정아버지가 생각났다. 어렸을 적 아버지도 낮에는 농사를 지으시고, 밤이면 시를 쓰셨다. 틈틈이 쓴 시를 모아 장날이면 근처 단위농협으로 달려가셨다. 단위농협에는 학교 동창 한 명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친구는 아버지의 시를 컴퓨터에 옮겨 적어 여기저기 문단에 원고를 보냈다는 것이다. 어느 해인가 추석에 고향을 갔더니 아버지는 그 친구 얘기를 해 주셨고 그 고마움에 나는 친정에 들를 때마다 친구에게 밥을 사곤 했었다.
불현듯 그 생각이 나서 나 역시 시인의 주소지를 따라 지도를 검색하니 근처 작은 보건지소가 보였다. 옳다구나. 먼저 보건지소로 전화를 걸어 이만저만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간곡히 부탁을 청했다. 보건지소에는 소장님 한 분만이 근무하고 계셨는데 다행히 그분을 알고 계셨다. 가끔 들러 진료를 받고 가신다는 말씀이 여간 반갑지 않았다. 흔쾌히 허락을 받고 다시 노시인께 연락해 보건지소로 원고를 가지고 가면 소장님께서 해결해 주실 거라고 했다. 노시인께서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며 반가워하셨다.
반 시간여가 흐르고 보건소장님은 시인이 주신 원고를 복사해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 순간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공책 한 장을 뜯어서 그 위에 연필로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써 내려간 긴 장문의 시 한 편, 노시인은 밥상을 책상 삼아 마루에 앉아 시 한 편을 지어내느라 몇 날 며칠을 쓰고 지웠단다. 고심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시 한 편에 어울리는 그림을 입히고 단단한 액자에 넣어 전시회를 잘 치러야겠구나 싶은 마음도 생겼다. 더불어 하루하루 바쁜 날들일지언정 이런 소소한 보람 하나를 채우는 설렘은 다가올 또 다른 행사를 이끌어 갈 큰 힘이 되리라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