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가 희박한 행성, 우리에게 익숙한 화성에서의 노을은 푸른색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대기층이 너무 얇아서 단파장도 산란이 잘되지 않아서 저녁에도 푸른색이 도달하며, 먼지를 직접 통과한 빛과 먼지를 돌아 지나온 빛이 만나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짧은 연휴가 있어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자 목적지 없이 서해 해안가를 드라이브하고 있었는데 마침 널찍한 창문 위 하늘 끝자락으로 구름이 몰려 들어오더니 금방 노을이 만들어졌다.
붉게 물든 노을빛은 물에 스며들며 번져가는 것이 물감인 듯 착각하게 하더니 그 흐름이 멋스럽고 곱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일까!
먼지가 많을수록 더욱 붉은 빛을 드러낸다는 노을, 그렇다면 다사다난한 삶의 굴곡이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 아름다운 삶의 질을 가졌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밤과 낮의 사이에서 아주 잠깐 동안 불타오르다가 세상 끝으로 사그라지는 인간의 욕심은 여기에서 바라보다 저 너머로 보내 주어야 하는 버려야 행복해지는 우리들의 노을이다. 낮을 포기하지 않고 타들어 가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노을빛 속에 우리네 젊음들이 서 있다.
90번째 생일을 한 달 남겨두고 나의 아버지는 먼 곳으로 홀로 가을 여행을 떠나셨다. 주어진 일 때문에 피곤하다는 변명으로 나는 나의 아버지께 소홀하였고 그 틈에 나의 아버지는 제대로 된 안부조차 남기지 않으시고 외롭게 떠나셨다.
한여름의 태양은 분명 느릿느릿 한 속도를 유지하였는데 노을빛은 왜 이리 빠르게 흘러가는지, 그리도 그 길이 그리우셨는지, 나의 아버지는 서둘러 떠나셨다.
우리에게 있어 부모는 무엇이 일어났는가라고 살펴보는 과거 지향적 역사이고, 자식은무엇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에 대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되는 미래지향적 문학이라고 하였다.
진한 커피를 한 모금 삼키면서 붉은빛으로 물든 바다를 내 어릴 적 기억 속으로 초대해본다. 그리고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세월의 모진 바람 속에서 버티는 나의 아버지를 소환해본다. 오래된 영화의 필름을 조심스레 되감듯 원본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 시간을 느리게 쓸 수만 있다면, 솔직히 느리게 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
많은 시인이 노래한 노을에 관한 아름다운 글들이 존재한다. 조병화 시인의 ‘해는 온종일 스스로 열로 온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여놓고’라는 시로 표현하였고, 김규동 시인의 ‘노을은 신이 나서 붉은 물감을 함부로 칠하며 북을 치고 농부들같이 춤을 춘다라는 시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김광균 시인의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라는 시도 있다.
노을 중에 유독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붉음이 더 뚜렷하기 때문인데 아마도 아침보다 저녁에 먼지가 더 많아서 그럴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시작과 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먼지에서 먼지로’인데 이러한 표현은 가장 종교적인 것 같지만 역으로 가장 과학적이기도 하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세상이 만든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세상이 정한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사람들은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각자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멋있는 저녁노을이 펼쳐지면 그다음 날 날씨가 매우 좋아진다고 한다. 가을 여행을 계획할 때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뜻대로 나는 쓸모있는 아름다운 노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