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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동진강’ 세계 속으로 흘러가라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인테리어디자인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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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12.25 14:1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인테리어디자인학과 객원교수

세계의 여러 나라가 식민 통치를 겪었지만, 일제의 우리 역사, 문화, 언어, 전통, 풍속 등 모든 것을 말살하고자 했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남긴 잔재는 반세기가 넘은 세월에도 크게 청산되거나 제거되지 않았다. 그만큼 일제의 통치가 극악하고 가혹했던 데도 원인이 있지만, 이를 청산하고 제거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모자랐던 것도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는 1세기 동안 굽고 휜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아 민족혼을 바로 세우고, 사회정의를 구현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2022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7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렇지만 우리의 주위에는 아직도 일제의 잔재들이 많이 남아있다. 언어, 교육, 인명, 지명, 법학계부터 풍수, 과학, 음악, 미술, 건축, 종교 등 우리 사회의 어느 한구석도 빠지지 않고 대부분의 곳에서 일제의 잔재를 찾아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우린 일제 지배 속에서 살아오던 그 모습을 남긴 채 아직 살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세종·충북 역사문화 바로잡기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류귀현, 임창철)는 ‘미호강의 본 명칭은 동진강이다.’라는 주제로 의미가 큰 특별 강연회를 주최했다. 이날 강연은 미호강의 명칭을 동진강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200여 명의 시민과 관계자가 참여해 관심을 고조시켰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이상태 한국영토학회장은 “미호천은 지난 1927년 토지 수탈을 위해 제정한 ‘조선하천령’ 반포 이후 일제가 붙인 이름으로 그 이전에는 그 어떤 역사적 문헌에 나타나지 않는다”라면서 “일제는 1910년 조선을 병탄하고 한반도 전역에 대한 지명조사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이때 작성한 ‘조선지지자료’를 바탕으로 1914년 전국의 행정구역 변경자료로, 그리고 식민지 수탈 자료로 활용하였는데, 미호천이라는 명칭도 이 자료에서 처음 등장한다”라고 강력히 주장하여 호응을 얻었다.

미호천은 충북 음성군에서 발원하여 세종시 합강리까지 하천길이 89.2km, 면적 1890㎢로 우리나라 11개 중의 하나인 큰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강이 아닌 천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 표기된 ‘동진’을 살펴보면 진천현에서는 주천(注川), 청안현에서는 반탄(磻灘), 청주목에서는 작천(鵲川), 진목탄(眞木灘), 망천(輞川), 부탄(浮灘), 연기현에서는 동진강(東津江)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이처럼 다양했던 강 이름을 1910년대에 일제가 통제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존재하지도 않았던 미호천(美湖川)으로 작명한 것이다.

미호천의 어원은 과거에 나루터였던 세종시 연동면 미꾸지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이 마을에는 지금도 5∼6가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1861년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는 미곶진(彌串津)으로 표기하고 있다. 일제 초기에는 미호(渼湖, 尾湖, 美湖)라는 다양한 한자 지명으로 사용되다가 1910대 중후반에 작성된 ‘조선지지자료’에 미호천(美湖川)으로 표기된 이후 다른 명칭은 사용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발간된 해동역사 속집 제14권 지리고의 기록에도 “동진강은 망이산으로부터 나와 남쪽으로 흘러 진천현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연기현의 남쪽에 이르러 금강으로 들어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은 동진(東津) “그 근원이 셋이니 하나는 진천 두타산이오, 하나는 청주 적현이며, 하나는 전의에서 나오는데 남으로 흘러 공주의 금강으로 들어간다”라고 역력히 기록되어 있고, 1872년 연기현 지도에까지 미호천이 동진강으로 표기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이전인 1882년 일본에서 발행된 조선 전도까지 미호천은 동진강으로 명백히 표기되어 있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닌가.

이처럼 미호천은 일제에 의해 생긴 이름일 뿐, 본래의 이름은 동진강이었음이 각종 문헌에 생생히 살아있음을 본다. 이를 되찾는 것이 역사의 복원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명칭을 버리고 새 이름을 짓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그동안 잃어버리고, 잊고 있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일성이다. 그 일환이 동진강 본래의 이름을 찾는 일이고 그 중심에 ‘운초문화재단’이 있다. 한 민간재단으로부터 비롯된 역사의식이 자유대한의 시민을 일깨우고 있다. 동진강(東津江)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 주는 것이 시급한 우리의 사명이 아닐까.

동진강은 충북 중부권역을 대표하는 하천이다. 1970~80년대 청주·청원지역에서는 미호천을 황탄(리)강이라고도 불렀다. 다시금 돌아보건대 동진강은 역사, 문화, 생명이 깃든 ‘강’이다. 동진강은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와 금속활자본을 낳은 인류문화의 메카이다. 옥산 소로리볍씨 유적이 동진강 언저리에 위치하고 직지가 탄생한 청주 흥덕사지가 동진강 지류인 무심천 품 안에 있다.

동진강은 생명의 보고이다. 흰꼬리수리, 독수리 등 각종 국제보호조류가 찾아들고 미호종개와 미선나무 자생지가 가장 먼저 발견된 곳이다. 한반도 텃황새(텃새로서의 황새)가 살았던 황새의 원고향이기도 하다. 동진강 수계에는 어림잡아 천연기념물 22건, 멸종위기 야생생물 25종, 산림청 희귀식물 17종이 서식·분포한다. 특히 금강수계의 천연기념물 46건 중 절반가량이 동진강 수계에서 서식‧자생하고 있다. 더욱이 동진강은 한국을 찾는 황오리의 절반 이상이 찾아와 겨울을 나는 ‘황오리의 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동진강은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강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강은 그 지역의 얼굴이라고 했다. 지역의 얼굴인 동진강을 우리 스스로 가꾸고 보듬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도시 문명은 큰 강의 유역에서 발생하고 성장했다. 사람과 동식물은 물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물이 흐르는 강(江)이 있는 유역에서 생존하기 시작하여 도시를 이루어나갔다. 고대 문명사에도 큰 강 주변에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고대 문명인 황하문명은 황하강 부근에서 구축된 것처럼.

현대 문명시대에 위대하게 성장한 대한민국 문명으로 한강문명(漢江文明)은 한강이 중심이 되었다. 한강문명은 길고 수량이 풍부한 한강 주변에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은 한강 인근에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제 청주를 중심으로 중부권역의 새로운 시대 문명은 동진강으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되어야 할 것이다.

동진강 유역은 모래가 유난히 많다. 모래는 물을 품고 뿜으며 거르는 기능이 탁월하다. 홍수와 가뭄에도 영향이 없다. 고운 모래가 만들어 준 특별한 환경에 미호종개와 흰수마자 같은 특별한 생물들이 서식했다. 강이 빚어놓은 완만한 구릉과 넓은 평야에 생겨 진천이 생겨나고 천오백 년 청주의 역사가 피어났다. 그야말로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던 상생의 터전이 아닌가.

최근에는 충북혁신도시와 세종특별자치시도 자리를 잡았다. 지난여름 출범한 동진강 명칭 복원위원회는 운초문화재단과 세종문화원 추진위원을 중심으로 기본 구축사업을 펼치고 있어 한껏 힘을 내고 있다. 20일 특강 주제발표에도 세종문화원에서 원장을 비롯하여 20명의 추진위원이 참석하여 함께한 시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이제 충북도와 도의회를 중심으로 민과 관이 뜻을 같이하여 본래의 이름 동진강을 다시 지도에 올려야 한다. 19c 후반 조선국전도(全圖)에 뚜렷이 나타나 있는 동진강을 짚어보며 가슴이 요동친다. 그 영원의 흐름을 멈추지 않고, 한민족 이끌고 온 겨레의 동진강이여! 그 이름 다시 찾아 찬란한 문화 문명을 꽃피우고 세계 속으로 흘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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