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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김일호 한국문인협회 세종시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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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2.05 11:0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일호 한국문인협회 세종시지회장

엄동설한 사흘간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에 홀로 있던 두 살배기 어린아이가 사망한 채 발견되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누구도 돌보아 주는 이 없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 갇혔던 그 어린 생명이 겪어야 했을 공포와 고통을 생각하니 가엾기 그지없다. 그래도 엄마라는 이름을 부르며 싸늘한 주검이 되었을 어린 생명 앞에 슬픔을 넘어 분노가 끓어오른다.

문득 2020년 우리사회를 충격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정인이 사건이 떠오른다. 정인이는 양부모의 천인공노할 학대로 채 1년도 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피골이 상접하고 상처투성이인 정인이 모습을 바라본 많은 사람들이 함께 슬퍼하고 울분을 토했다.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 숨겨졌던 인간이하의 민낯을 돌아볼 수도 있었다. 그 귀한 어린 생명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반성과 추모의 행렬도 이어졌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런 사건이 이 땅에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원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와 유사한 사건들이 종종 보도되고 있는 현실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한 기대와 믿음조차 산산 조각내기도 한다. 뉴스를 보기 두렵기도 하다. 눈을 떠 보거나, 귀를 열어 듣거나, 입으로 옮기고 싶지 않은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보다는 올 해가, 어제보다는 오늘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희망고문이 된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마저 점차 무디어지는 것 같아 슬프기도 하다.

물질만능주의에 편승한 한탕주의와 극단적 이기주의 만연에 따른 인명경시 풍조는 양심의 경계를 넘어선지 오래다. 무법 무질서의 행태는 상식과 도덕적 기준에 따라야 하는 삶의 공동선마저 범람하고 있다. 게다가 짙은 어둠과 찬바람 몰아치는 뒤안길 같은 그늘 속에서 질병과 가난, 격리나 다름없는 소외를 끝내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웃도 적지 않다. 그 길에 채 피워보지 못한 죄 없는 어린 목숨들까지 죽음의 골짜기 까지 끌어들이는 사건들을 보면 차마 믿기지 않을 만큼 놀랍고 암울해진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노랫말이 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는 말이 있다. 한 철 피었다 지더라도 사철 형형색색 피어나는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사람이다. 세상 무엇보다 향기로워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람이다. 드넓은 우주 안에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생물 중 사람 외에 어디에도 없다. 아름답기에 소중하고 소중하기에 아름다운 사람은 천성을 안고 태어난다. 꽃보다 아름답고 소중한 천성은 곧 품성이고 인성이다.

악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완벽한 선인으로 갖추어 태어나는 사람도 없다. 사람으로 살아감에 있어 선과 악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내 목숨이든 남의 타의 목숨이든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다. 내 목숨이 귀하듯 남의 목숨도 그만큼 귀하게 생각한다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기세등등했던 강추위가 서서히 뒷걸음 치고 입춘지절이 다가왔다. 눈 녹아 졸졸 흐르는 냇물소리가 정겹다. 봄을 기다리며 설랬던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그 가슴 안에 눈부신 햇살과 파란하늘의 빛을 담다보면 꽃피고 나비 날며 새들 지저귀는 봄 마중 길 멀지 않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 우리 모두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 향기를 나누며 한바탕 해맑게 웃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믿고 싶다, 그 보다 더 바랄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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