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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첫 발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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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3.06 14:1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던 아기가 어린이집으로 등원하는 첫날이다. 한 번도 할머니 품을 떠나지 않던 아이라 걱정이 태산이다. 울면서 선생님들의 애를 태우지 않을까. 집에만 있으니 힘이 들고 보내니 걱정이다.

힘들어 낑낑대는 것을 본 주변에서는 빨리 어린이집에 보내라 했다. 아직은 대소변을 완벽하게 못 가리고 말을 잘 못 한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뤘다. 아파트라면 놀이터에서라도 친구를 만날 수 있을 테지만 주택이고 주변에 다른 집도 없어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어른들밖에 없으니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계속 교육한 결과 대소변을 가리고 의사 표현을 하니 보낼 시간이 된 것 같았다.

이십 개월 동안 할머니의 울타리 안에서 제멋대로 지내다가 드디어 작은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우리 아가. 첫날은 놀다가 할머니가 눈에 보이지 않자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등 하교 시에 눈물을 흘리며 가지 않으려고 했다. 적응 기간이 긴 아기들은 오래 간다고 했는데 일주일 정도 되니 울면서도 잘 갔다. 처음으로 오후까지 있게 되자 혹시 울며 보채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먼 옛날 초등학교 입학 할 때가 생각이 난다. 내가 다니고 싶어 하던 초등학교는 우리 집이 이사했기에 안 된다고 했다. 고집을 부리는 나에게 아버지는 나중에 전학을 시켜준다고 달래며 학교까지 손을 잡고 갔다. 가죽 책가방을 메고 교문을 들어서니 원하지 않았던 학교였지만 다 잊어버리고 마음이 설랬다.

운동장에 가니 손수건을 가슴에 단 내 또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다들 보자기에 책을 싸서 다니던 때에 예쁜 가죽 가방을 멘 나는 으쓱하며 교실에 들어갔던 기억이 새롭다.

아버지만 졸졸 따라다니며 아버지 주머니 사정은 아랑곳없이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사달라고 졸라대면 나에게만은 언제나 주머니를 열었던 아버지. 지금 생각해도 철딱서니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응석받이 딸이었다. 그런 내가 손녀의 첫발을 함께하다니 감회가 새롭다.

사회로의 첫발이 낯설고 겁이 나는가 보다. 누구나 그렇듯 우리 아가도 첫발이 무섭고 힘든지 내 품을 떠나 버스에 오를 때는 큰소리를 내며 울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겪어야 할 과정이기에 마음은 아프지만 참을 수밖에.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한가 보다. 처음에 3시간 정도 있는 것으로도 행복했다. 아기 데려다주고 돌아와 청소하고 일 좀 하다 보면 금세 데리러 갈 시간이 된다. 그래도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러다 오후 3시까지 있게 되면서 점점 시간이 여유롭다. 그런데도 할 일을 다 못했는데 아이가 올 시간이 된다. 부지런히 움직여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든다. 옛말에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더니 3시간도 감사했는데 6시간이 짧다는 생각하다니 간사한 인간의 마음을 다시 확인했다.

누구나 첫발을 걸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새로운 마음으로 비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부모의 보호 아래 살다가 더 큰 세상을 향해 내디뎠을 그때. 마음처럼 되지 않음에 힘들었을 거고 두려웠을 것이다.

나 역시 내 세상의 기둥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두려움 같은 건 모르고 거침없이 세상에 나갔던 것 같다. 주변에 세상에 이름을 떨치던 분들이 늘 함께 있었기에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어떤 장애도 없는 줄 알았다. 그때는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조금 망설일 뿐 도전하는 데 어떤 두려움은 없었다.

세상에 나오고 만만치 않던 사회에서 겪어야 하는 일들은 오로지 내 몫임을 알았다. 언제까지 아버지 그늘에서 살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전투적인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여성성을 잊어버리고 자신도 모르게 남성성이 스며들어 변해가는 내 모습은 중성적 캐릭터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해마다 그렇듯이 오늘도 날씨가 꽤 춥다. 고등학교 3학년들의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그동안 배우고 익힌 노력을 평가받는 날인데 날씨라도 포근하면 좋으련만. 어깨가 무거운 아이들에게 해마다 이날은 왜 그렇게 추운지. 부모들 역시 가슴 졸이며 시간이 가길 기다릴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다 같을 테니까.

수능이 끝나면 12년간의 수고의 마침표를 찍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후련할까. 아니면 새로운 마음으로 비상을 꿈꾸며 설렐까.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이나 받듯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을까. 성적표를 받기 전까지는 그동안 힘든 공부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있을까.

세상의 첫발을 딛는 젊은이들이 힘차고 멋진 발걸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요즘 젊은이들은 많이 배우고 미리 경험하는 일들이 많아서 다르겠지만 지난 나의 시간을 반추해보며 노파심에 그들이 힘들지 않길 바라본다.

사회로의 첫발을 딛는 내 손녀가 주변을 살피고 많은 사람과 잘 어울리며 미래에는 자신과 세상을 책임지는 세상의 빛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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