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신문=대전] 한은혜 기자 = “일 몰아서 했다고 잔여기간에 휴무를 보장해주는 직장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있습니까.” (20대 사무직 유모씨)
“‘일당백’이 우리 회사 모토고 이게 현실이다. 근로자들을 더욱 쥐어짤 것.” (30대 영업직 김모씨)
정부의 주52시간제 유연화 방침에 2030 직장인 상당수가 현실성 없는 제도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22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초 '일이 많을 때는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몰아서 하고, 일이 적을 때는 푹 쉴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의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노동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기업별로 연장근로 단위를 ‘주’ 외에 '월·분기·반기·연'으로도 운영할 수 있게 했지만, 노동계와 직장인의 반응은 싸늘하다.
정책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과 함께 장시간 노동의 고착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정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몰아서 일한 뒤 유럽처럼 한 달 쉬기’가 국내 기업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꼽았다.
5년차 공무원 민모(29)씨는 “일을 몰아서 하고 휴가를 간다고 해도 민원인은 그런 사정을 알아주지 않는다. 결국은 내가 쉬면 옆자리 동료가 일을 대신 한다는 건데 눈치 보여서 쉴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정부가 내놓은 제도가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노동자는 장기 근로에 내몰리고, 사업주만 이득을 취할 것 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10년차 직장인 박모(40)씨는 “주 52시간제로 변경되면서 기업들은 52시간제를 대비하려고 사람을 더 뽑아 어찌됐든 고용창출이 됐다. 69시간으로 바뀔 경우 일부 회사에선 계약직을 해고하고 정규직 근무 시간을 연장하는 등 사업주만 이득을 볼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소 제조업체 노동자 신모(47)씨는 “제조공장 생산라인은 매일 돌아가게 설정됐다. 몰아서 일은 가능해도 몰아서 쉬는건 어렵다. 지금도 사람이 없어서 법정 의무 연차 쓰기도 눈치 보이는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반면 경영계는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을 일제히 환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그동안 산업현장에서는 주 단위 연장근로 제한 등 획일적·경직적인 근로시간 제도로 인해 업무량 증가에 대한 유연한 대응에 어려움이 있었다. 극단적 사례를 들어 장시간 근로를 조장하거나 근로자 건강권을 해친다는 노동계 주장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지역 경제계 관계자는 “영세한 중소기업 현장은 직원 한 명을 채용하는데 떠안아야할 부담이 크다.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기업의 업무효율을 높이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국무회의에서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힘에 따라 전반적인 재검토 작업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