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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준비없는 이별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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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4.03 17:0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눈이 펑펑 내리고 강추위가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추위에 떨던 어느 날, 언제나 집 주변을 떠나지 않던 연예인이 우리와 작별을 고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품에 안긴 녀석이라 더욱 정이 들었었는데.

5년 전, 어느 날 새끼를 낳은 것 같은데 어디에 두었는지 궁금한 나는 어미 고양이에게 새끼를 낳았으면 데리고 와 보라고 했다.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한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그 녀석이 바로 연예인이다. 사진 찍으려고 하면 멋진 포즈를 취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던 고양이. 제 이름을 부르면 어디선가 달려와 먹이를 먹던 녀석. 몸집도 제일 좋고 귀여운 짓도 잘했다. 다른 고양이는 머리를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데 연예인은 곁을 주며 사랑을 독차지했다.

건강하고 우람하던 녀석이 이웃에 사는 힘센 녀석에게 물리고 찢기더니 점점 야위어갔다. 동물들의 세계에도 폭력적인 녀석들이 약한 녀석들을 학대한다는 것을 연예인을 통해 알았다. 누가 해코지하려 들면 나를 부르며 내 뒤에 숨곤 하던 녀석의 통통한 몸은 점점 야위어갔다.

눈이 무척이나 많이 내린 날, 연예인이 베란다를 서성거렸다. 추위 때문인지 피골이 상접 해 보여서 우유를 가지고 가서 먹으라 했더니 쳐다만 볼뿐 먹을 생각을 안 한다. 다른 녀석들은 집을 떠나 돌아다니다 오는데 집 밖이 무서웠는지 내 주변만 맴돌던 녀석.

길고양이일지라도 내 집에 둥지를 틀었으니 먹이를 사다주고 생선이나 삼겹살을 특식으로 먹였는데 힘센 녀석들에게 시달려서일까 깨어나지 못하고 그만 짧디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오랫동안 키우던 반려견을 잃고 몇 달을 가슴이 먹먹해서 절대 반려동물은 안 키운다고 했는데 자기들 멋대로 둥지를 틀더니 밥을 달라던 녀석들. 내 집에 온 지 어느덧 10년 남짓. 해마다 새끼를 낳았지만 세 마리만 목숨을 건졌다. 씩씩하게 뛰어다니며 잘 자라더니 폭력적인 이웃 고양이의 해코지를 받고는 5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별은 어떤 이별이든지 가슴 에이는 아픔을 동반하는 것 같다.

싸늘하게 식어 온기라곤 없는 손을 잡고 멍한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얼굴에는 마음속의 혼란을 애써 감추려는 표정이 아니라 넋이 나간 그대로의 모습이다. 꿈엔들 생각이나 했으랴. 잠자는 사이 세상이 뒤집힐 줄을.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으면 소생하리라 기대하고픈 아버지는 현실을 부정이나 하려는 듯 딸의 손을 꼭 잡고 있다.

튀르키예, 아직은 터키가 더 입에 익은 나라에 발생한 강한 지진은 부모와 자식, 형제들과 생사를 갈라놓았다. 사람이 살던 곳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파괴. 자연재해 앞에 누구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 누가 이런 상황 앞에 초연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경주와 포항에도 강력한 지진으로 지인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기에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코앞에서 일어난 내 일 같다. 생활 터전이 사라지고 이별의 고통을 당한 그들은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까. 속수무책인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사람은 얼마나 많은 이별하고 살까. 사람과의 이별도 애완동물과의 이별도 헤어짐은 고통을 수반하는 것 같다. 엄마가 50대에 가시고 효도는 고사하고 작은 것 하나도 해 줄 수가 없음에 가슴 아팠다. 요즘 같은 장수 시대에 아버지는 80에 가셨으니 그나마 엄마보다 오래 사셨다고 위로해야 하나.

50도 안 된 젊은 올케를 보내고 혼자된 동생과 어린 조카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당분간 이별이 없으려니 했더니 당뇨 쇼크로 작은 오빠가 70대 초반의 나이에 우리와 작별을 했다. 준비 없는 이별이 자주 일어난다. 이제 점점 더 많은 이별이 다가오겠지. 마음의 동요를 줄일 수 있는 이별이면 좋으련만.

내가 초등학교 3학년쯤. 큰오빠는 교회에 다녔다. 교회에서 어떤 책을 가지고 와서 내게 주었다. 다른 내용은 다 잊었는데 시골에 사는 아이가 서울서 온 친구와 친하게 지내다가 이별하는 대목에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별이 뭔지도 몰랐을 텐데 왜 그렇게 가슴이 뻐근해지며 눈물을 흘리면서 아파했는지.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있어서인지 지금도 슬픈 이야기나 아픈 이야기가 전개되는 책을 보면 가끔 울 때가 있다.

좋은 사람과 헤어짐은 아쉬움에 가슴이 에이지만 좋지 않은 인연과의 이별도 고통을 주는 것 같다. 좋은 사람은 아쉬워서 가슴 아프고 좋지 않은 관계로의 이별은 풀지 못하는 숙제같이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가는 게 인생이라던가. 살면서 수많은 이별을 겪으며 산다. 가슴 아픈 이별보다 아름다운 이별이기를 기도해 본다. 모든 헤어짐이 준비된 것이라면 상처는 덜하지 않을까.

지진으로 세상이 무너지고 가족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먼 나라 사람들. 준비도 없이 해야만 하는 이별 앞에 아득한 눈망울이 내 가슴에 박힌다. 애완동물과의 이별도 이렇게 가슴이 에이는데 자식을 가슴에 묻은 고통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그들의 아픔이 내 가슴으로 들어온다. 막막한 그들에게 어떤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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