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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연분홍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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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4.10 15:4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커피 한잔을 담아와 창가에 선다. 연분홍 꽃물결에 숨을 멈춘다. 올해도 또 놓쳤다. 먼 남녘의 매화꽃도 무심천의 벚꽃도, 흐드러진 꽃에 마음을 풀어보고 싶었다. 복사꽃이 어여쁜 꽃동네서 태어나 진달래를 꺾으며 산에서 놀았고, 제비꽃 자운영 꽃을 따라 논둑을 달리면 작은 심장이 쿵쿵거렸다.

창밖의 때늦은 벚꽃 한그루에 마음을 달래보다 ‘한 사나흘은 더 꽃 잔치겠다’ 하며 큰애한테 전화를 했다. 봄꽃 날리는 것이라도 감상하자고 제주도로 가자한다. 큰애는 서울에서 나는 청주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이슬비가 내려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술렁이는 느낌을 받았다. 안내직원이 제주도의 기상악화로 비행기 출발시간이 많이 지연 될 수 있다고 손님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들떠서 제주도의 날씨는 체크하지 못했다. 육지의 이곳처럼 꽃대궐을 이루고 있겠지 하는 생각만 했다. 큰애한테 전화를 했더니 서울도 제주행 비행기는 딜레이가 되고 있다며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연락이 왔다.

직원한테 물었더니 제주도 날씨가 험해서 내일도 비행기가 결항 될 수 있다고 한다며 걱정을 했다. 돌아오는 날 중요한 일정이 있었다. 검정고시 중등 국어 수업을 자원봉사로 가르치고 있다.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이다. 그러니 더욱 빠질 수 없는 일정이다. 결정을 하지 못하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비행기는 지연된다는 안내만 되풀이되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돌아오는 비행기가 결항했을 때 미치는 영향을 생각했다. 반대로 제주도 행을 포기 했을 경우 예약한 호텔, 렌터카 모두 취소가 되지 않을 것도 염려가 되었다. 엄마를 즐겁게 해 준다며 즉석 여행을 계획한 큰애한테 미안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보딩을 하겠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서울에서도 보딩을 하고 있다며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한다. 눈부신 꽃구경과 강의를 해야 한다는 책임사이에서 갈등했다. 마음속에 수 십 볼트의 불꽃이 튀다가 비행기를 타지 말자는 결정을 했다.

꽃은 내년에도 볼 수 있지만 수 십 년 만에 어려운 다짐을 하고 공부하러 나온 검정고시 수강생들의 마음을 꽃구경 가는 마음과 견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타지 않는 일은 처음이라 직원에게 얘기 했더니 이유를 묻는다. 중요한 일정이 있는데 돌아오는 비행기가 차질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런다 했더니 무전을 치고 내 이름을 대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오송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기다리는 큰애와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그 밤 마주 보고 웃었다.
그렇게 연분홍 꿈은 깨지고 말았다. 올해는 모든 꽃이 동시에 피고 있다. 창밖의 풍경도 벚꽃과 산 벚꽃, 싸리 꽃, 진달래, 개나리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꽃은 꽃이어서 아름답듯이 우리의 삶도 이런 잔잔한 출렁임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벚꽃이 훌훌/ 나태주

벚꽃이 훌훌
옷을 벗고 있었다.
나 오기
기다리다 지쳐서
끝내
그 눈부신
연 분홍빛 웨딩드레스
벗어 던지고
연 초록빛 새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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