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드디어 집 근처 교육도서관이 새 얼굴로 문을 열었다. 주말마다 별일 없으면 들러 책을 보곤 했는데 꽤 오랫동안 문이 닫혀 갑갑증이 일었었다. 하루, 한 달, 꼬박 일 년 가까운 시간 공을 들이더니 이제야 베일을 벗은 것이다. 첫눈에 들어오는 북 테라스와 입구부터 펼쳐지는 벽면의 서고가 인상적이다. 각각의 공간마다 나름대로 특색을 살린 책장과 알록달록 의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주인을 기다리는 모양새도 정답다. 누구든 앉아서 책을 읽고 싶어지게 한다. 이제 이렇게 멋지고 편안한 공간으로 탈바꿈되었으니 나는 다시 이곳을 나의 쉼터로 정해야겠다.
나는 초등학교를 산과 들로 에워싼 작은 시골에서 다녔다. 한 학년에 두 학급씩 있었으려나! 한 반에 친구들이 삼 십여 명은 되었던 것 같다. 학교에는 도서관이 따로 있지 않았고 대신 교실마다 초록색 칠판 옆으로 큰 책장이 있었다. 책장 안에는 그 시절 초등학생의 눈높이에 맞춘 듯한 동화책들이 꽂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첫 도서관은 아마도 이 학급문고가 아닐까 싶다. 그때 읽었던 책들이 『어린 왕자』, 『나의 오렌지 나무』 등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책이었다.
중등을 지나 고등의 수험생 신분을 유지하는 동안 학교에는 도서관이 생겨났다. 체계를 갖춘 좀 더 많은 종류의 문학 전집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공부보다는 소설이 좋아 주말이면 항상 소설책을 네댓 권씩 빌려 하교했다. 어른들에게 시골이란 한시도 쉴 수 없는 바쁜 곳이지만 꿈많고 활기 왕성한 청소년들에게는 때로는 무료함의 산실이기도 했다. 그 무료함을 오로지 빌려온 책으로 채웠다. 책 속에 빠져있으면 그의 매력은 끝이 없었다. 시간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도서관은 작은 시골 마을까지 찾아가 지역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사는 이 지역에도 읍 단위마다 교육도서관이 있고 각 면 단위로 군립도서관과 마을도서관이 존재한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람들을 기다린다. 그저 책을 빌려주고 돌려받는다거나 수험생이나 취업준비생들이 공부하러 오는 곳을 넘어서서 다양한 인문학 강의가 열리고 취미생활을 배우고 가르치는 장소로 광범위해졌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듯 아직도 ‘너의 장래 희망은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서슴없이 도서관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답을 한다. 누구든 들어와 앉아 책 한 권 손에 쥐고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해 보는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책과 함께 고요하게 살고 싶었던 꿈은 저만치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아이들과 온종일 참새처럼 종알종알 떠들어야 하는 일로 채우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여전히 도서관을 자주 찾는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에 앉아 책 한 권을 펼쳐 놓고 있으면 세상의 소음은 사라지고 나의 정신은 끝없이 책을 따라간다. 모래사막처럼 버석거리던 마음도 어느새 정돈되는 곳. 나의 도서관에 앉아서 오늘은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