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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걷기의 미학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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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6.11 14:1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20세기 기계문명의 사랑을 받는 것은 자동차가 먼저 꼽힌다. 인류의 획기적 발명품인 바퀴, ‘바퀴의 혁명’인 자동차는 진화를 거듭해 자율주행차로 발전하고 있다. 그래도 일부 미래학자는 단순한 바퀴 시스템인 자전거가 스스로 구르는 자동차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을 한다. 인간 근력이라는 극히 원초적 힘으로 작동하는 자전거의 생명력에 주목하며 ‘걷기’를 생각해본다. 걷기는 자전거보다 처음 시작되었다. 나 또한 시내에서는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것을 생활화하고 있다.

스포츠나 놀이는 즐기면서도 일부러 시간 내 걷는 것은 인간 고유의 활동·가치로 평가받을 것이다. 직립보행 호모 에렉투스의 최고 건강 유지법도 올바른 자세로 충분히 걷는 것이라고 한다. 걷기만 잘해도 현대인의 질병·질환 중 90%를 치유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빠르면 몸에 좋고, 느릿느릿 여유 있는 소요·산책은 정신에 좋다. 산지를 찾으면 등산, 강·계곡 위주로 다니면 도보여행으로 차별화도 된다. 일상 속 걷기는 바쁜 현대인이 추구하는 여유의 표상이다. 불교에서 선(禪)을 중시하며 앉아서 수행하는 좌선, 누운 자세의 와선, 선 채의 입선에 이어 행선이라고 할 만도 하다. 이처럼 걷기는 별다른 준비나 비용도 덜 들어 누구에게나 권하기도 좋다.

옛말에 수노근선고 인노퇴선쇠(树老根先枯 人老腿先衰)란 말이 있다. 나무는 뿌리가 먼저 늙고 사람은 다리가 먼저 늙는다는 뜻이다. 사람이 늙어가면서 대뇌에서 다리로 내려 보내는 명령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전달 속도도 현저하게 낮아진다. 불로장생의 비결은 선단(仙丹)과 선약(仙藥), 산삼이나 웅담, 녹용 같은 값비싼 보약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예로부터 민간에 전해 오는 속담에 다리가 튼튼해야 장수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다리가 튼튼하면 병 없이 오래 살 수 있다. 사람의 다리는 기계의 엔진과 같다. 엔진이 망가지면 자동차가 굴러갈 수 없듯이, 사람이 늙으면서 가장 걱정해야 하는 것은 머리카락이 희어지는 것도 아니고 피부가 늘어지고 주름살이 느는 것도 아니다. 다리와 무릎이 불편하여 거동이 어려워지는 것을 제일 걱정해야 한다. 장수하는 노인들은 걸음걸이가 바르고 바람처럼 가볍게 걷는 것이 특징이다. 두 다리가 튼튼하면 백 살이 넘어도 건강하다. 사람의 전체 골격과 근육의 절반은 두 다리에 있으며 평생 소모하는 에너지의 70%를 두 다리에서 소모한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큰 관절과 뼈는 다리에 모여 있다. 젊은 사람의 넓적다리뼈는 승용차 한 대의 무게를 지탱하는 힘이 있으며 슬개골(膝蓋骨)은 자기 몸무게의 9배를 지탱하는 힘이 있다.

특별히 넓적다리의 근육이 강한 사람은 틀림없이 심장이 튼튼하고 뇌 기능이 명석한 사람이다. 미국 정부의 노년 문제 전문 연구학자 사치(Schach) 박사는 20살이 넘어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10년마다 근육이 5퍼센트씩 사라진다고 하였다. 뼛속의 철근이라고 부르는 칼슘이 차츰 빠져나가고 고관 관절과 무릎관절에 탈이 나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그로 인해 부딪히거나 넘어지면 뼈가 잘 부러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다리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가? 쇠는 단련(鍛鍊)해야 강해진다.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망치로 두들겨서 단단하게 하는 것을 단련이라고 한다. 연철(軟鐵)은 단련하지 않으면 강철(鋼鐵)이 되지 않는다.

사람의 다리도 마찬가지다. 단련(鍛鍊)해야 한다. 다리를 단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다. 다리를 힘들게 하고 피곤하게 하고 열심히 일하게 하는 것이 단련이다. 다리를 강하게 하려면 걸어라.

각 지차체마다 시민들의 걷기를 생활화하도록 다각도에서 아름다운 길을 만들고 있다. 제주의 올레길 이후 각 지역에도 개성 넘치는 걷기 코스가 등장했다. 내가 사는 증평에서도 보강천 둘레길이 군민들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대도시일수록, 선진국일수록 걷기와 뛰기, 사이클 기반 시설이 좋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좋은 걷기 코스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안전시설도 잘 갖춰 가면 지역 경쟁력이 높아지고, 시민 만족도도 상승할 것이다.

걷기 캠페인으로 건강 증진을 유도하면 건강보험공단 지출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적절한 걷기로 나아질 시민 개인의 활기와 만족도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덤이고 성과다. 걷기는 무엇보다 사유와 사색, 정신건강에도 좋다.

‘걸으면서 싸우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걷는 이가 많아지면 사회 곳곳에 사람의 나무가 서고 높은 언성도 줄어들고 잔잔한 웃음마저 깃들게 될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 기어만 다니다가 어느 날 일어서 첫발자국을 뗄 때 모든 어른들이 박수치며 환호하는 순간이 있었다. 내가 일어나 우주를 이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신이 내린 첫 번째 선물을 받은 것이다.

걷기는 한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거룩한 예술의 현장이라도 할 수 있다. 걷고 또 걷는 것이 곧 인생이다. 혼자 걷는 것도 좋지만 이제 온 가족이 틈을 내어 함께 걸어본다면 더욱 숭고하고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것이 저마다 추구하는 건강과 행복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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