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입구에 들어서니 문학의 대가에게 보내는 글들을 걸어 놓았다. 쓰긴 하지만 그 편지를 받는 이는 부재다. 나도 편지 한 줄 써볼까 하다가 속물적인 것 같아 마음으로만 써서 붙였다.
엄마! 하고 부르며 달려가 품에 안기고 싶다. 늘 보아왔던 울 엄마의 모습 같다. 기념관 입구에 있는 선생님의 사진은 현대문학의 대표하는 거장 문학가라기보다 내 옆에 항상 같이 한 엄마의 모습처럼 다가왔다.
통영에서 만난 분이 박경리 선생님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불후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진주여고를 졸업한 뒤 결혼해서 남편과 자식을 잃는 아픔을 가진 분이라고. 선생님이 어땠다는 이야기를 해 주며 어릴 적 삶을 안타까워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현지인의 설명을 듣고 나니 더욱 가 보고 싶었다.
생가는 선생님과 무관한 사람이 살고 있어 공개할 수는 없다고 했다. 내 생각에는 통영시에서 그 집을 사서 복원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다.
토지라는 대작을 본 뒤 지인들과 함께 하동 최참판댁 세트를 찾아가 보았다. 섬진강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세트장은 드라마를 보는 듯 오밀조밀하게 만들어졌다. 나는 서희가 된 양 여기저기 우아하게 거닐어 보았다. 원주에 있는 박경리문학공원도 가서 26년간 토지를 썼다는 원고를 보고는 감탄사만 연발할 뿐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현대문학의 대가의 생가와 발자취를 본다는 기쁨에 한달음에 달려갔건만 보채며 나가자고 울기만 하는 손녀의 방해로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마음은 자꾸 기념관을 뒤돌아보게 했다.
아쉬움이 남아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다시 가서 보기로 했다. 다행히 그곳에 도착하니 손녀가 잠을 잔다. 작은 조카보고 아기를 보고 있으라 하고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크진 않았지만 아담하게 꾸며져 있다. 선생님의 약력과 선생님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꾸며 놓았다. 김약국의 딸들의 무대가 통영이라 그 시대의 모형도 만들어 놓았다.
사회와 현실을 비판하고 인간성과 생명을 추구하는 작품들을 많이 발표한 분. 당신의 삶의 일부가 소설 속에 녹아들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말과 동족끼리의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만나 힘겹게 살아낸 선생님의 삶이 글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어느 지면에선가 “나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문학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고 했다. 작가는 자신의 고통과 불행을 자양분으로 삼아 자라나는 존재다. 무릇 작가라는 존재는 스스로 고난의 수형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과 불행에 대한 자의식 없이 대작가가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의 기적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와의 불화, 편모슬하에서의 불우한 성장기, 전쟁 때 겪은 남편의 죽음,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들의 죽음. 고독과 가난. 선생님의 삶에 불행과 고통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기 위한 초석이었을까.
‘이 수많은 작품 속에서 박경리가 말했듯“왜 쓰는가? 하는 물음은 ‘왜 사는가.’ 하는 물음과 통한다. 고 했다. 이렇듯 그의 언어들은 그의 삶 자체이자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의 총체이다.’ 선생님을 소개한 액자에 있는 글이다.
쓰는 일과 사는 일을 일직선 위에 놓고 사신 분 같다. 생전엔 뵙지 못했지만 이렇게 그분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다 보니 한 번쯤 만나 뵌 분 같고 엄마같이 편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기념관에 들어서면서 만난 사진이 내 맘속에 각인 된 탓이리라.
묘소까지 가 보고 싶었지만, 아가가 깰까 봐 다시 또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이번에 와서 통영이 더 가까이 다가온 것 같다. 예향의 도시답게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이 많고 하나같이 유명한 분들이 많아서인가. 현대문학 대가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다 보니 초보 글쟁이도 이제 조금씩 눈이 뜨이는 것 같다.
수필 한 편 쓰면서도 왜 나는 매끄럽게 쓰지 못할까 늘 걱정이었다. 남들은 다 잘 쓰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주눅이 들었다. 선생님이 살던 때처럼 어렵지 않은데 삶의 풍요가 가져온 나태인가. 앞으로는 더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글을 쓰는 게 사는 것.’이라는 말처럼 글쓰기가 삶의 일부라 생각해야겠다.
선생님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다 보니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 커진다. 선생님을 더 이해하고 싶어서 ‘파시’를 사 들고 나왔다. ‘파시’에는 선생님의 어떤 삶이 녹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