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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매미의 시간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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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8.01 15:1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늘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유치원을 오는 다섯 살 난 남자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할아버지는 생계로 바쁜 아들과 며느리를 대신해 손자 녀석을 돌보았는데 그 정성이 가히 지극이었다. 한 번도 대충 아이를 데려다주는 적이 없었다. 자가용이 있었지만 늘 걸어 다니며 걷다가 꽃을 보면 꽃을 보고, 개미가 지나가면 또 앉아서 보다가 곁에서 모든 걸 함께 하는 것 같았다. 아주 작은 몸짓이라도, 소소한 단어 하나라도 아이에게 예쁜 감성을 수시로 심어주곤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그러느라 녀석은 유치원에서 가장 늦게 등원하는 아이가 되었지만 말이다.

지난달에는 비가 자주 내렸다. 아이는 그날도 공룡이 잔뜩 그려진 비옷을 걸치고 앙증맞은 투명한 우산을 쓰고 할아버지를 뒤따르게 하며 유치원에 왔다. 그런데 유치원 문 앞에서 들어오질 않았다. 왜 안 들어오냐고 물었더니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신기하다며 현관 아래로 떨어지는 빗물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빗방울이 또르르 구슬처럼 굴러간다며 웃다가, 빗소리가 토닥토닥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고도 했다. 저 아이의 마음속엔 어쩜 저리도 맑은 감성이 들어있는 것인지, 누가 저런 아름다운 감성을 심어준 것인지, 함께 앉아서 내리는 빗물을 보며 나도 그날은 천진난만 다섯 살로 돌아갔다.

엊그제는 자신의 가방만 한 채집통에 매미 한 마리를 넣어 들고 왔다. 어느새 친구들이 이 녀석 주위로 모여들었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었다며 친구들을 상대로 매미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상식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매미가 나무껍질에 알을 낳으면 그 속에서 한 살이 될 때까지 있다가 돌아오는 여름에 애벌레로 변신한다지. 변신한 애벌레는 나무 아래 땅속으로 들어가 일곱 살 동안 살다가 지금처럼 더운 여름이 오면 다시 땅 위로 올라와 껍질을 벗고 매미가 된다고 나름 매미 박사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친구들은 모두 와! 하며 함성을 질렀다. 녀석의 설명에 살짝 살을 붙여 나도 몇 가지를 얹어 매미 수업을 끝냈다. 별반 다름없이 창밖 나뭇가지에서는 매미가 울고 있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도, 나도 예전처럼 그 소리가 무심하지 않았다. 위풍당당 설명을 모두 끝낸 아이는 창문 밖으로 채집통 문을 열고는 매미를 날려 보냈다. 할아버지와 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단다. 매미는 어두운 땅속에서 오랫동안 예쁜 꿈을 꾸며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데 세상으로 나오면 며칠만 행복하니 그 행복을 빼앗으면 절대로 안 된다고 할아버지가 알려줬단다. 그러니 매미를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나면 꼭 다시 매미가 행복하게 살 나무둥치로 돌려 보내주기로 했다고 말이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의 작은 행동 하나는 분명히 함께했던 아이들에게도 전이되었을 것이다. 일곱 해를 기다려 단 칠 일을 살고 떠난다는 매미의 생애를 소중히 여겨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생각 없이 매미채를 휘두르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일상에는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관심 하나하나가 존재한다. 귀여운 다섯 살 난 녀석의 할아버지께서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작은 일상이 쌓여 평생 등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매미 한 마리가 깊고 어두운 땅속에서 칠 년을 기다려 성체로 태어나듯 말이다. 부모로서, 교사로서, 어른으로서 누군가의 등불이 되려면 적어도 이런 아름다운 심성들을 차곡차곡 쌓는 과정이 있어야 함을 새삼 깨닫는다. 그나저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즈음이면 이 녀석은 또 어떤 행동과 말을 앞세워 유치원 문을 두드릴까? 사랑이 아주 많은 아이니 아마도 코스모스 한 송이를 손에 들고 나타나 선물이라며 쑥 내밀지는 않을까?

열대야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요즘 활짝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매미 소리가 깊어가는 여름밤을 채우고 있다. 역시 여름은 매미 소리로 완성된다. 이 울음이 저마다에게 그저 소음이 아닌 긴 시간을 기다려 결국 이루는 아름다운 완성의 소리로 귀하게 가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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