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목요세평] 염치

이종구 수필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3.08.09 13:3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종구 수필가
‘염치(廉恥 :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없다’라는 말이 있다. 풀이 말처럼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이다. 廉은 ‘검소하다’ 라는 뜻으로, 恥는 ‘부끄럽게 여기다;’라는 뜻이다. 恥를 파자하면 耳와 心이다. 듣고 마음 속에서 부끄러움이 없는지 되새겨 보라는 말이 아닐까? 아니면 귀와 마음이 깨끗하라는 말은 아닐는지.

맹자는 사단(四端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에서 수오지심(羞惡之心 ;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말했다. 수오지심은 의(義)에서 나온다고 했다. 옳음의 마음과 행동에서 부끄러움을 알게 된다는 말로 이해가 된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니 아예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정치계 소식을 듣다 보면 입이 떡 벌어져 말이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 평소에는 국민의 대변자요, 심부름꾼이며 대표라고 강변하던 이들이 어느 날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죄가 없다’고 강변한 모습들, 당당한 척 변명하는 모습들, 이 핑계 저 핑계로 논점을 흐리는 모습들은 염치없어 보이기도 한다. 우스운 일은 그렇게 죄가 없다고 강변하던 이들이 어느 날 벌을 받는 모습을 보면 과연 저들이 국민의 대표라고 하던 그 말에 염치나 있었는지 묻고 싶다.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하는 가짜 뉴스도 나온다. 바로 염불위괴(恬不爲愧)이다. 그러면서 그들의 옳음은 과연 무엇일까 궁굼하기도 하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一日淸閑 一日仙(일일청한 일일선)”이라는 말이 나온다. 마음이 하루 동안 맑고 한가하면 그 하루는 신선이 된 날이라는 말이다. 일상의 염려와 고민에서 떠나고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면 신선의 삶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본다. 세상의 물욕을 벗어나 부끄러움이 없는 삶의 경지, 곧 욕심에서 벗어나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삶으로 부끄러움을 사전에 차단하라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지도자의 위치에 서면 법을 떠나 높은 수준의 도덕적인 noblesse oblige가 요구된다. 그래서 가끔은 교육자들의 일탈이 학부모들에게 질타를 받고, 사회 지도층의 탈법에 국민들이 분노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민주 공화국이다. 민주(民主)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민주(悶主)라고 생각하는지(悶: ‘어두운, 깨닫지 못하는’의 뜻도 있다) 오로지 자기만 옳고, 자기만 떳떳하고 당당하다고 우기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1월말 “한국이 국제 반부패 지수인 2022년 ‘국가청렴도(CPI) 평가’에서 180개국 중 31위를 차지해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반면 민주주의 지수와 국가경쟁력 지수 등 일부 지표는 하락세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31위이니 상위권이라 기분 좋은 일이지만
도대체 ‘국가청렴도’라는 말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염치를 알고 행동하면 부패는 없을테니까. 상상을 해본다. 황희(黃喜) 정승과 맹사성(孟思誠) 정승이 정치를 하셨던 세종대왕 시절의 우리나라 국가청렴도는 아마도 세계 1위가 아니었을까? 해마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청렴도 평가를 받고, 교육기관은 의무적으로 소속 직원과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까지 청렴교육을 실시한다. 물론 어린학생들에게 일찍부터 청렴한 삶을 교육하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환영할 일이지만, 어른들의 어지러운 잘못을 어린 학생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여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난해 광주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공사장이 붕괴 된 후로도 인천 검단 아파트 붕괴 등 곳곳의 아파트 공사장에 붕괴사고가 뒤를 잇고 있다. 철근을 넣지 않은 속칭 ‘순살 아파트’가 15곳이 있다는 뉴스의 보도가 들려 온다. 분명 불법이다. 무너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철근을 넣지 않고 어찌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염치가 없는 공사이다.

이런 저런 뉴스에 짜증이 난다. 말복이다. 더위가 한창이다. 입추가 지나면 그래도 서늘함이 있었는데 이제는 9월까지 덥다고 한다. 이런 짜증 나는 시기에 가짜 뉴스는 더더욱 짜증나게 한다. 더위를 가시는 시원한 뉴스가 나왔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