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닌한 무드로 연출할 수 있는 리버시블 자켓이에요. 아더 컬러도 있으니 취향에 맞게 초이스해주세요.”
온라인 쇼핑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익숙할 화법이다. 한글로 쓰였지만 영단어로 구성된 문장들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한글이 한국어 사용자를 배신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은 걸까? 과도한 외래어 사용에는 일종의 도전의식마저 느껴진다.
지난 2020년 국립국어원이 성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언어 의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1.2%는 '외래어나 외국어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로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휴대폰 앱(App)을 활용한 재테크'라고 설명하는 대신 '앱테크'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명료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외래어 사용은 해당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소통 단절을 야기한다. 외국어에 친숙한 정도가 세대와 계층을 가르는 탓이다.
양로원 대신 '시니어 센터', 추가접종이 아닌 '부스터 샷', 품절 말고 '솔드아웃'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현실적으로 번거롭다는 문제도 있다. 모어가 아닌 언어를 두고 단어의 의미를 유추하기는 쉽지 않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구도심 개발로 유입된 중산층 이상 계층이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지주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와 접미사 '-피케이션(-fication)'의 결합이다. 어원을 모른 채 단번에 알아듣기가 어렵다면 매번 검색을 통해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모어가 아니라면 조어(造語)도 쉽지 않다. 단어의 구성 방식을 체화하지 않고서는 '콩글리시'를 구사하거나 생성된 영단어를 그대로 차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정착한 외래어를 몰아내려는 시도는 아니다. 많은 외래어가 우리의 일상 속 깊숙히 자리를 잡았고 인터넷, 카페, 휴대폰 등의 단어는 아주 친숙해 대체할 수 없다.
하지만 전문 용어가 아닌 이상 대중의 언어는 보편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외래어의 무분별한 남용은 그만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