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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나전과 화가의 만남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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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9.11 15:3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차 한잔 들고 테이블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수평선 위로 아지랑이가 아물아물 피어오른다. 오가는 차들이 내는 소음을 바다가 받아 삼켜버린다. 좋건 나쁘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넓은 엄마 품 같은 바다가 무척이나 좋다.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으로 한 달간의 출장 중이다. 너무 멀어 집에 다녀가기가 힘들다고 푸념한다. 손녀 바보인 할아버지는 매일 영상통화를 했다. 아마도 손녀가 보고 싶어서 하는 투정이지 싶다. 아기 데리고 장거리 여행은 엄두가 안 나서 조카를 불렀다. 여행도 하고 오가는 동안 아가를 살피라는 말에 군말 안 하고 허락했다.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청하면 달려오는 조카여서 마음이 편하고 한편 고맙기도 하다.

남편의 숙소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동피랑으로 갔다. 작은 언덕에 자리한 마을이다. 통영으로 관광 온 사람은 한 번쯤 다녀갔을 것 같은 동화 같은 마을. 바다를 끼고 있고 벽화가 있어 눈과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없었을 것 같던 큰길이 나 있다. 벽화를 그려 관광객을 유치한 발상이 멋지다.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 벽에도 벽화가 그려져 있다. 지붕과 지붕이 맞대어 있는 작은 언덕마을에 벽화가 없었다면 불편하게 사는 주민의 생활상만 보였지 싶다.

케이블카로 미륵산에 올라 그림 같은 통영항을 바라보았다. 미륵산 정상에서 본 통영항은 한국의 나폴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가끔 다녀가도 늘 기분 좋은 곳이다. 점심 식사 후 커피 한잔하자고 했더니 남편이 갈 데가 있다며 데리고 간 곳이 휴 갤러리다.

갤러리 입구로 들어갔더니 도자기를 전시. 판매한다. 그곳이 카페인 줄 알고 잘못 들어간 것이다. 카페는 갤러리 옆에 있었다. 차를 마시려고 하는데 남편과 한 여인이 같이 들어 왔다. 갤러리 주인인 옻칠 회화 화가다. 잠시 후면 자기 남편이 올 거라고 했다.

부지런한 남편은 어딜 가나 아침 산책을 한다. 이른 아침에 집 주위를 청소하는 사람이 성실해 보여 마음이 가 인사를 했다고 했다. 산책길에 만난 분이 옻칠 회화가 하정선 작가의 남편이다. 자상한 모습과 부지런한 태도를 보고 수 인사를 하고 보니 경찰이었다. 선한 얼굴 어디에도 경찰 같은 모습이 안 보였다며 연락처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우리가 왔다는 말을 듣고 바로 퇴근했나 보다. 차를 마시며 하 작가의 남편에게 통영에 대해 많은 설명을 들었다. 통영은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줄인 말이다. 통제영이 있을 당시에는 수도인 한양과의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했다. 한양과의 활발한 교류로 인해 서울 문화의 영향을 받아 예술과 먹거리로 특별한 도시가 되었다는 설명과 통영의 예술가 이야기도 들려줬다.

자작나무와 옻이 닮았다며 갤러리 주변에 자작나무도 심었다. 자작나무 껍질은 기름기가 많고 습기에 강하고 불에 잘 타기 때문에 옛날 결혼식 때 신방을 밝히는 촛불의 재료로 사용되었기에 결혼식 첫날밤을 '화촉(樺燭)을 밝히는 재료였다고 한다. 경주에 있는 천마총의 천마도도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이다. 자작나무와 통영의 역사, 문화를 이야기하는데 통영의 홍보대사 같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시간을 너무 뺏기에 미안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시원한 커피 한잔 마시고 나니 개인 다실이 있다며 차를 우려준다고 가자고 한다. 2층으로 올라가니 다실이 예쁜 모습으로 우릴 반긴다. 바다 쪽으로 난 커다란 창을 통해 차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음에 행복했다. 그림을 그린 듯 정갈하게 차려낸 다과상. 어느 것 하나 그림 아닌 게 없는 것 같다.

차를 마신 후 다실 옆에 있는 갤러리를 둘러보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예술인 같지 않은 모습이어서 놀랐고 멋진 작품을 만든 작가라는 사실에 더 놀랐다. 나전과 옻칠로 만든 작품을 보고 감탄사만 연발할 뿐 놀라움에 말을 잃었다. 대작은 꼬박 6개월을 작업해야 작품이 된다고 했다. 나무에 아교로 여러 번 칠하고 빛을 내는 조개껍질을 잘라 밑그림에 붙이고 옻칠하고 말리는 과정이 엄청 힘들단다. 우리나라 기업가와 중국의 유명인사들이 탐내는 작품이라는 설명을 하는 작가의 남편은 자부심이 가득 차 있다.

천생연분이란 말은 이 부부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경찰 같지 않은 자상한 남편은 외조를 정말 잘한다. 아내의 갤러리에 상주하는 큐레이터 같다. 아내를 존경하는 마음이 말씨 하나하나에 묻어난다. 서로를 존중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부러울 정도로 서로를 아끼며 손발을 잘 맞추는 부부 같다.

그림을 만난 후 감명을 받은 나는 하 작가를 안아주었다. 작은 체구와 연약해 보이는 그녀의 어디에서 그런 끈기와 인내, 어마어마한 강인함이 나오는 걸까. 그녀의 머리 위로 오로라가 발광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유화로 시작해 옻칠 회화 작가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그녀. 眞水無香 眞光不輝라 했던가. 바로 그녀를 두고 한 말 같다. 그녀에게 받은 감동이 나를 어떻게 변하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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