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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가을에 쓰는 편지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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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9.18 14:3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엄마!
물러날 것 같지 않았던 여름이 떠날 채비를 하고 가을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네요. 들판은 벌써 겨자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어제부터 장맛비처럼 가을비가 내려서 걱정이 돼요. 지금은 김장배추에 필요한 만큼만 내렸으면 좋겠는데 들판의 벼가 걱정이 되네요. 농사짓는 엄마를 보고 자라서인지 나도 모르게 농사와 연결되어 날씨를 체크 하는 버릇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여기는 모두 잘 지내고 있답니다. 어제 군산 언니하고 통화했는데 언니도 아무 일 없다 하고 큰언니도 무탈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집안일도 뒷전 아이들도 뒷전 곧잘 다녀오던 언니네도 방문한 지 오래되어 추석에는 꼭 가보려고 하고 있어요.

그곳은 어떤가요? 아버지도 할머니도 잘 계신지요? 오늘 새벽 깨어 참으로 오랜만에 엄마를 떠올렸답니다. 작은아이 때문인 것 같아요.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취재를 위해 이번 주말에 출국한다고 해요. 그럼 오래 못 보니 밥 한번 먹자고 했더니 시간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데 매우 서운하더라고요. 작은 아이 하는 말이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지난주에 다녀오지 않았냐고 하는데 그건 지 아버지 생일이라 내려왔는데 자기 딴에는 이것저것 목적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얄밉다고 했더니 수아가 “엄마 빈이는 엄마랑 판박이니 혹시 엄마 젊었을 때 외할머니한테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봐” 하면서 웃네요. 그 말에 오늘 새벽 엄마를 떠올린 것 같아요. 결코 작은아이 못지않게 밉상이었을 저를 떠올리니 엄마가 보고 싶어졌어요. 저한테 서운한 마음이 들 때 엄마는 어떻게 하셨을까? 지금의 저처럼 서운하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셨는데 그 마음 어디다 내려놓았을까? 내 나이 때 엄마 모습은 어땠을까? 한참 기억을 더듬어 봤어요.

고향 집에서 환갑잔치를 했던 생각이 났고요. 엄마가 오래오래 사실 줄 알았던 철부지였던 제 모습도 오버랩 되었어요. 잔칫상 앞에서 동네 사람들과 덩실 춤을 추시며 “ 7남매 모두 건강하니 이만하면 됐다”라고 하셨던 엄마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지금의 나는 그런 삶의 경지에는 아직 다다르지 못한 것 같아요. 여전히 욕망덩어리의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내 나이의 엄마는 삶의 이치를 깨우친 분이었다는 것을 알 것 같아요. 그날의 엄마, 아버지의 환한 미소가 생각이 나서 잠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엄마.
여기 세상은 갈수록 험악해지네요. 묻지마 칼부림이 대낮에 일어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해요. 지구환경은 갈수록 악화 되고 있어 홍수, 지진, 산불로 인해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고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늘 걱정이에요.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으니 수아는 잘살고 있답니다. 결혼식 날짜 잡고 엄마 산소에 같이 다녀왔으니 결혼한 것은 알고 계실 것이고요. 사위도 무던한 성격이라 잘살고 있답니다. 아직 아이는 갖지 않았는데 아이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는 세상이 되었답니다. 한번 물었다가 “엄마가 키워 줄겨?” 한 후로는 묻지도 못하고 있어요.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으니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요. 직장여성의 육아는 수아 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니 우리나라 출산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어요. 저도 손주를 안아볼 수 있을지 걱정이기는 하답니다.

엄마!
그러고 보니 가을만 되면 엄마에게 편지를 쓰네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으면 가을이라고 하더니 엄마가 남겨 놓은 추억에 마음을 내려놓고 아련해져요. 오늘은 왠지 겸손한 마음으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도 종종 소식 전할게요. 안녕히 계세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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