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서 속담이나 격언 등에는 이런 제유법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제유적 표현이 어느 경우에는 상당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일부분의 잘못이 전체의 잘못으로 인정되어 사람들 생각 속에 굳어져 개념화되는 경우이다.
지난 6월 4일 방송된 KBS2 ‘1박2일’에 양양의 산나물 축제에서 과자 한 봉지에 각 7만원이라는 바가지요금 내용이 방송됐고, 곳곳의 지역 축제에서 손바닥만한 감자전 3장에 2만 5000원, 1만 7000원 닭강정, 4만원 바베큐 등 전국의 축제 현장은 바가지 요금이라는 대표성을 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인천의 소래 포구는 ‘떨어져 나간 게 다리’가 됐다. 모두가 일부분의 잘못이 전체의 잘못으로 비추어진 제유적 사례이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이런 경우를 다반사로 보고 있다. 어느 학교 학생이 한 명이 잘못하면 그 학교 학생 전체가 욕을 먹으며 한사람이 모범적인 행동을 하면 그 학교 학생 전체가 모범생으로 인정받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가끔 *이스*에 보면 ‘국회의원 세비 줄이는데 찬성하면 ☞를 누르시오’라는 것을 보게 된다.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하는 의원도 많은 반면, 한 두 사람의 과오가 전체 국회의원에 대한 혐오감으로 표현된 제유법의 현상이다. 정당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당 대표들의 언행은 곧 그 당 전체의 모습으로 비쳐진다.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은 바르고 정확하다.
필자가 국민학생일 때, 선친이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시간만 나면 “네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훌륭하다고 추앙받던 분이시다. 아버지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라고 하셨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내 가족, 내 부모를 추앙받게 하거나 욕되게 한다는 제유이다. 어려서는 그저 착하고 바른 행동을 하라는 훈계의 말씀으로만 이해했었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나의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나는 물론 내 가족, 더 나아가 내 집안, 내 조상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만의 바름이 아니라 내 후손 모두에게도 바름이 요구됨을 알게 됐다. 부분이 전체를 대표하는 중요함이다.
지난 7월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사망한 이후 전국교사들이 모여 교권 확보를 위한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9월 4일은 ‘공교육 멈춤의 날’로 선언하고 교권 회복을 위한 서이초 교사의 49재 추모 집회를 했다. 그 과정에서 교육부를 비롯한 일부 교육청은 교사들의 연·병가 처리를 불법이라고 하며 징계 운운 했다가 국회의 선처 요구 등으로 철회하기도 했다. 한 교사의 애처로운 죽음이 교권 회복의 불씨가 됐다. 교권 회복의 대표성이 된 것이다.
작은 볼트 하나가 빠져 위성 발사가 연기 되기도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무시 될 수 있는 작음의 큰 가치이다. 개인의 희생이 나라의 발전에 원동력으로 기여하는 이야기도 많이 있다. 큰 가치를 지닌, 부분의 대표성이다. 가을이다. 속상함을 떨쳐내고 맑고 푸른 가을 하늘처럼 작은 가치를 크게 하는 ‘내가 전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