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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비명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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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11.06 17:18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산골 소녀는 왜 그 나라에 가고 싶었을까. 나라 이름이 부드러워서일까. 아니면 ‘요한나 슈피리’의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어서일까. 내가 만일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면 꼭 스위스를 가고 싶었다. 가능하리란 생각도 못 했던 나라 스위스를 밟게 되었다.

어릴 적에 비행기가 머리 위를 날 때면 쌕쌕이 지나간다고 쳐다보던 하늘에 하얀색의 긴 꼬리가 남아있었다. 흰 꼬리를 바라보던 산골 소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드디어 꿈에 그리던 스위스에 온 것이다.

외사촌들과 2년에 한 번씩 해외 나들이를 했었다. 2년 전 가기로 했던 나들이는 코로나로 취소하고 다시는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어느 날 사촌 동생이 전화가 와서 떠나자고 한다. 손녀 양육 중이라 과연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확답을 주지 못했다.

마음은 벌써 비행기를 타고 있는데 현실은 답답했다. 딸에게 전화해서 babysitter를 구하자고 했더니 남을 믿기 어려운 세상이라 그런지 탐탁하지 않은가 보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방법을 찾는 것은 내 몫이다.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동생네 휴가는 아기 보면서 지내라 했다. 이질녀 둘을 아기가 잘 따르니 괜찮을 것 같았다.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리저리 전화를 돌린 끝에 아기 문제는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스위스가 가장 가 보고 싶은 나라였기에 오래 머무는 상품이 있을 줄 알았는데 서유럽 3개국 중 스위스에 머무는 기간이 가장 짧았다. 이탈리아에서 6일간 머물며 유적지부터 관광지까지 여행코스를 마무리했다. 한여름이니 날씨가 너무 더워 헉헉거리며 땀을 흘리며 다니느라 힘들었다.

이탈리아 관광 후 스위스 베른에 도착했다. 이곳이 스위스 수도라는 사실이 놀랍다. 취리히나 제네바처럼 큰 건물도 없고 면적이 크지도 않은 것 같았다. 아인슈타인이 살던 집이 있고 용병들의 용감한 모습을 한 조형물을 세워놓은 곳. 장미공원에서 내려다본 베른은 고대시대에 온 듯이 고즈넉하고 고풍스럽다. 불볕더위 속에 다녔던 이탈리아와는 달리 기온이 온화하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 같아 다니기에 딱 좋다. 드디어 스위스 땅을 밟았다. 베른 시내를 내려다보며 내 생애에 이런 날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서인지 목울대가 뻐근하다.

알프스산맥에 속하는 경치가 아름다운 융프라우요흐. 베른주와 발레주를 나누는 경계다. 암벽 안에 자리한 융프라우요흐역 안에는 관광 안내소, 기념품 가게, 얼음 궁전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해발 3,573m 스핑크스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 매점에서 우리나라 컵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국 사람이 얼마나 많이 왔으면 이역만리 이 높은 곳에서 컵라면을 먹을 수 있을까.

전망대를 나가서 설레는 마음으로 오른 설산. 내 생에 처음 밟아본 빙하. 동경의 대상이었던 곳. 가슴 설레며 설산에 안겨 행복을 만끽하고 싶었던 그곳에서 나는 울음을 삼켜야 했다. 휭하니 드러난 산등성이. 눈으로 뒤덮여 아름다움을 뽐내던 설산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없이 황량하게 맨몸을 드러내며 누워있다. 빙하로 뒤덮였던 계곡은 얼음이 녹아버려 민낯만 내보였다. 설산 중간중간도 구멍이 뚫리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아름다웠다던 융프라우요흐. 얼마 남지 않은 빙하로 마음을 달래기에는 너무 안타까웠다. 이번에 세 번째 온다는 사촌 동생은 지난번에는 이번처럼 황량하지 않았다며 안타깝다고 했다.

노르웨이에 갔을 때는 설산 속에서 내리는 폭포를 많이 보고 다녔었다. 여기서는 시원하게 내 뿜는 물줄기를 보기가 쉽지가 않았다. 점점 사라져가는 빙하. 빙하의 흘리는 눈물(폭포)은 이제 더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휑하니 구멍이 뚫리는 것 같다.

알래스카 빙하가 붕괴하면서 발생한 홍수로 주택이 무너져 내리고, 낮은 기온을 유지하던 시베리아도 온도가 상승하고 미국 데스밸리 사막에 역사상 최대 폭우가 내렸다는 뉴스다. 그뿐만 아니라 하와이에 있는 섬 하나를 불태웠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피해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난다고 난리다.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에 대처하는 방법을 내놓지만, 인간이 대처하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게 아닐까. 비행기에서 나오는 많은 일회용 쓰레기가 무척 많다. 상공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재활용을 잘하고 있을까. 가는 곳마다 일회용품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가 똑같다. 인간의 편리가 낳은 피해는 바로 인간이 받는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기보다 내일의 재앙을 막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나만이라도 일회용품과 비닐 사용을 줄이며 자연에 대한 미안함을 갚아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프랑스에 도착하니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삼복더위에 춥다고 하니 이건 또 웬일이란 말인가. 겨울옷을 입은 프랑스사람이 간간이 보인다. 에펠탑이 점등하는 시간이 밤 10시라며 현지 가이드는 꼭 보고 가라 한다. 유람선을 타고 센강을 오르내리며 주변을 관광하는 내내 추위에 떨었다. 머플러를 머리에 두르고 성냥팔이 소녀처럼 덜덜 떠는 내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한국은 찜통더위라는데 한국과 기온이 비슷하다는 프랑스에서 추위라니. 어딜 가도 피할 수 없는 기상이변. 삼복더위에 춥다는 소리를 할 줄이야. 자연의 비명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자연에 미안해야 할 행동을 줄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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