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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삼월, 입학으로 시작하다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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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4.03.05 14:5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봄볕도 궁금한 듯 살짝살짝 창틈을 비집고 들어서는 강당에서 입학식이 한창이다. 넓은 강당 안, 올해 입학하는 초등학생이 삼십여 명, 유치원생이 열 명 남짓이다. 새 옷에 새 신발을 신고 등에는 저마다 저만한 가방을 둘러메고 있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다. 고사리 같은 손을 가슴에 올려 ‘국민에 대한 경례’를 하는가 하면 단상 위로 올라가 입학허가서를 받는 모습 속엔 듬직함도 살짝 엿보인다.

작년보다 아이들이 또 줄었다. 초등학교는 겨우 두 학급을 유지하게 되었고 유치원은 작년보다 한 학급이 줄어 올해는 한 반이 되었다. 지난해 시월부터 유아 모집에 교직원 모두가 발 벗고 나섰지만 좀처럼 연락이 오지 않았다. 유치원에서의 활동사진을 영상 제작하고 팜플렛도 멋지게 만들어 배포하며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한 학급으로 줄었다. 학급이 줄어드니 어쩔 수 없이 교사는 두 분이나 자리를 떠나야 했다. 한동안 올해 한 학급으로 배정받았다는 소식에 뒤엉킨 실타래처럼 생각이 복잡해졌었다.

이 유치원으로 발령받은 지 어느새 네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발령받던 첫해에는 모두 세 학급이 운영되고 있었다. 각반마다 정원을 채우고 대기자 명단까지 있었다. 내가 오기 몇 년 전에는 총 여섯 학급이 있었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세 학급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이 유치원의 터줏대감과도 같은 시니어 어르신의 말씀은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청소와 아이들 간식을 도맡아 해 주시는 어르신이셨다. 통학 버스가 세 차례에 걸쳐 아침, 저녁으로 운행되었다니 유치원의 규모가 어찌했을지 알 법도 하다.

한 해 한 해 차츰차츰 아이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간식을 조리하는 주방에 들어가면 조리 도구들을 비롯해 간식 접시가 눈에 띌 만큼 쌓여 있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그 숫자가 사라졌다. 대형 솥단지가 쓸모를 잃고 어두운 창고 안으로 들어가 한껏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다. 제 할 일을 잊은 그릇들이 어디 이뿐인가. 아이들이 쓰던 숟가락, 포크, 접시들이 멈춘 시간에서 깨어나 서랍장 깊은 곳에서 나올 날만 기다리지만, 현실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아이들을 그리워하듯 텅 빈 신발장이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채 비스듬히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참새 소리 낭랑하던 교실엔 이제 불빛 사라진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고 문은 잠겼다. 쓰지 않는 물건들을 쌓아놓는 창고가 되어 버린 지 오래된 교실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작년 말을 기준으로 우리 지역 주변에서 어린이집 몇 곳이 문을 닫았다는 신문방송을 보았다. 오래전 우리 아이도 다녔던, 꽤 역사가 있기로 알려진 한 어린이집이 올해 초 폐원되었다는 소식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아이들이 줄고 있다는 것은 단지 우리 유치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텅 빈 교실에 창문을 활짝 열어 아이들을 불러 모을 방법을 생각해 본다. 유치원 마당 한가운데 햇살 내리쬐는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다니는 날을 상상해 본다. 봄이면 함께 꽃씨를 심어 화분을 만들고, 여름이면 잔디밭에 마련된 수돗물에 호스를 연결해서 신나게 물놀이하면 좋겠다. 가을이면 화단에 활짝 핀 해바라기를 다 함께 바라보고 겨울이면 소복소복 쌓인 눈밭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꽉 찬 한 해를 마무리하는 그림을 그려 본다.

절기상 땅에서 나와 소리내기 시작하는 때라는 경칩(驚蟄)의 개구리처럼 에너지 넘치는 이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유치원 안에서, 좋은 선생님으로 즐거운 놀이를 많이 가르쳐주고 함께 성장해 볼 작정이다. 나에게는 열세 명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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