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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권 감수성’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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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2.03.29 19:25
  • 기자명 By. 충청신문

먼저,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가령, 정부에서 국민의 머리모양과 복색을 일방적으로 지정하고 위반자를 단속한다면 어떨까. 직장에서의 휴대폰 사용이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면서 근무 중엔 압수하고, 툭하면 길거리에서 소지품을 검사한다면, 그 나라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일까 아닐까.

위의 예가 황당하다면 수위를 낮춰 보자. 정부에서 국민의 머리칼이나 치마의 길이, 복장의 색깔이나 몸가짐을 통일하도록, 그나마 ‘민주적 논의를 거쳐’법을 만들자고 한다면 어떨까….

이런 시책들의 명분이야 얼마든지 내세울 수 있다. 국민들 간의 위화감 불식과 일체감 진작, 그리고 그런 선택을 개인 사정이나 취향에 맡길 때 드는 노력의 낭비를 막자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다. 그 지침을 모든 국민들이 따르도록 함으로써 거두어질 질서와 효율성은 덤이다.

이것이 그리 먼 나라의 고릿적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지금은 물론 앞으로 언제든 바랄만한 양상으로 여길 이는 없을 것이다. 파시스트가 아니라면 상상이나 가정조차 시대착오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가정을 바꿔보자. 위의 일들이 당장의 우리에게가 아니라 미래를 주도할 우리 자녀들에게라면 어떤가.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을 상황이라면….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피교육자이니, 이 정도는 있을 수 있고, 또 필요한 일이기도 할까. 그런 것도 교육이고 교육적 가치는 있을까.

이 같은 질문들을 통해 짚어보고 싶은 것이 바로 ‘인권감수성’이다. 요즘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눈에 쌍심지를 돋운 채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며 반대하는 이들을 보면, 교육관의 차이나 인권의식의 간극 이전에 아예 그들의 인권감수성부터가 의문스러워져서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도통 위험시하거나 시기상조라는 이들에게 다시 묻자. 학생들에 대한 자질구레한 규제와 단속의 교육적 가치는 무엇인가. 머리나 옷차림까지 단속해야 할 나이는 도대체 몇 살부터 몇 살까지이며,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야 그런 조례가 시의적절해질까. 그런 규제가 교육의 이름으로 가능하다면, ‘평생교육의 시대’에 국가가 교육대상이 될 국민에게 그런다 한들, 부당한 시대착오라 할 수 있을까.

방과 후에 개별적으로 하는 자율학습도, 대체 몇 살까지 어른들의 간섭을 받고나서야 각자에게 맡길 수 있을 것이며, 그렇다면 학생들의 진정한 자율성은 대관절 언제 어떻게 길러진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이 학생인권조례라는 자잘한 자치법규 하나로 학교문화가 일거에 인권 친화적으로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당연히 무리다. 관련 법규라면 이미 UN아동권리헌장이나 헌법 같은 훨씬 상위의 것들도 있다.

행동은 의식에서 나오고 의식은 감수성에서 일구어진다. 학생인권과 관련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단지 ‘학생의 권리’가 아니라 ‘학생 인권’이라고 굳이 동어반복하는 이 시대의 진지한 교육의제 앞에서, 의식과 행동의 촉수인 감수성부터 확인하고 싶어서 이렇게 시시콜콜 빤한 물음을 상기시켜 보았다.

김병우/충북교육발전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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