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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은 고마운 이웃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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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2.04.17 19:2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저녁 모임으로 간 식당에서 청어조림을 먹었다. 잔가시가 많아 발려내는 게 힘들어도 맛은 별미다. 비웃이라고도 하는데 고기잡이가 끝나고 오다 보면 태반이 죽고 그때 메기를 넣으면 무사히 살아온다. 메기를 피하려고 기를 쓰고 헤엄을 치는 까닭에 죽지 않는다. 잡혀 있는 공포는 결국 천적에의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원양어업에서도 고기가 든 수조에 천적을 넣으면 괜찮은 것처럼 외국에서 실험쥐를 들여올 때도 고양이를 넣으면 죽는 일이 없다니 특이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천적이란 천연적으로 타고난 적을 말한다, 어떤 생물에게 피해를 입히는 위협적인 존재며 개구리에 대한 뱀과 쥐에 대한 고양이를 뜻한다. 뱀하고 고양이만 없어도 개구리와 쥐는 마음 놓고 살 것 같지만 생태계의 리듬이 깨질 수 있다. 누구라도 천적 앞에는 오금을 펴지 못하나 그 때문에 멸종되는 일은 드물다. 사는 것 역시 장애물 경기라면 스트레스는 우리들 의지를 시험한다. 힘들게 하면서 때로는 살리기도 하는 역반응을 보면 생존 요건으로 천적이 작용한다는 피치 못할 순리가 그려진다.

요즈음 청미천 가의 복숭아나무에 꽃눈이 도드라졌다. 얼마 후에는 꽃이 만발할 테고 우리 고장은 또 한 차례 복숭아 축제가 벌어질 것이다. 아는 사람 한 둘만 있어도 충분히 얻어먹을 수 있을 만큼 흔한 곳에서 해마다 느끼는 감상 또한 많다. 꽃은 꽃대로 좋고 열매 또한 맛있다. 한여름 다 익을 때 보면 애들 볼기짝만큼 컸다. 얼마나 탐스러운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데 가끔 뒷맛이 떫을 때가 있다. 익을 만큼 익었고 빛깔도 그만하면 괜찮을 때는 태풍이 없어 그리 된 경우가 많다. 시원찮은 것들이 떨어지지 않고 남아 어설프게 익는 탓으로 생각했다.

그 때 내릴 결론은 떨어질 건 떨어져야 정석이라는 점이다. 복숭아도 천적에 버금 갈 태풍이 있어야 맛있게 영근다. 농사를 짓지 않아 그런지 몰라도 과일 농사가 잘 되는 곳에 태풍이 잦다는 것은 괜한 소리가 아니라고 보았다.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이 비바람으로 형성된다면 비바람에 떨어지는 것도 담대하게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태풍으로 피해가 잦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속상하지만 맛난 과일을 위해서라도 치명적이 아닌 소소한 피해는 앞으로의 수확을 위해 감수해야지 싶다.

초가을 대추를 먹을 때도 그런 일은 많다. 과육에 찍힌 점을 보면 먹음직스러운데 푸석한 껍질은 겉돌았다. 밤은 떨어진 것도 괜찮던데 라고 하다가 알았다. 밤은 딸 시기가 되었지만 대추는 아직 멀었다는 증거다. 늦게 싹이 트는 대추나무는 잎이 나오자마자 태풍에 시달리는데 그러한 과정 없이 열매를 달 때는 맛이 없다.‘바람아 불어라 대추야 대추야 떨어져라. 얘들아 얘들아 주워라’고 하는 노래가 있다. 한때는 단순히 먹고 싶어 하는 마음과 신나게 주우라는 뜻으로 알았지만 이제는 태풍으로써만 맛난 과일을 달 수 있다는 의미로 생각한다.

그게 과일농사의 전부는 아니고 바람이나 태풍을 천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풍작의 유무가 그로써 결정되는 건 성장의 방해가 되지 않는 스트레스의 실체를 드러낸다. 스트레스보다 더 큰 스트레스는 극복하지 못하는 바로 그 점이다. 고양이가 있어야 살아남는 쥐처럼 괴롭히는 여건이야말로 최대의 버팀이다. 걸림돌이 있어야 디딤돌이 생기듯 천적을 천적으로 생각하면 고통이나 돌파구로 보면 한없이 유익한 존재다. 며칠 밖에 살지 못할 때 천적에 시달리는 건 억울하지만 오래 살 때는 필수여건이다. 청어를 싣고 오는 배가 하룻길이라면 메기를 넣을 필요가 없지만 오래 걸리기 때문에 천적을 넣어두는 것과 같다.

천적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청어같이 우리도 가혹한 운명으로 살아남는다. 항해를 하면서 치르는 파도와 태풍 또한 뱃사람들의 장벽이나 생각하면 그도 필수 여건이다. 천적까지는 아니어도 그게 아니면 1년 남짓은 보통인 항해가 무료해지고 견디기가 더욱 힘들다.

반면 천적이 도움을 준다고는 하지만 약간의 무리수는 감안할 일이다. 앞서 언급한 청어는 천적인 메기를 피해 죽기 살기로 헤엄친 결과 살아난 것이지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초가을 벼이삭이 이따금 태풍에 쓰러질 때도 생각보다 타격은 덜하다. 당장은 불안하지만 곧 바로 일으켜 세우는 농부 때문에 탈 없이 수확을 하게 된다. 실제 거두고 나면 수확은 줄어도 절반은 쓰러져 있던 걸 보면 그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천적이 장애물이 아닌 고마운 존재로 남기 위해서는 물리치고 살아남으려는 의지로써만 가능하다. 적당한 독이 가끔은 약이 되는 것처럼 스트레스는 시련을 디딤돌로 바꾸기 위한 역할이다. 고기 잡는 배들도 태풍과 비바람을 헤쳐 가는데 하물며 저마다의 탑을 쌓는 삶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로써 윤택해질 삶을 생각해야겠다. 나태한 마음자세로는 평지에서도 낙상하고 다칠 수가 있다. 절벽 끝에 있는 것이 위험한 게 아니라 겁에 질린 채 무력해지는 게 문제다. 비바람이든 태풍이든 극복하는 게 관건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새삼 돌아보게 된다.

이정희/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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