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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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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11.17 15:3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사랑하는 왕자를 위해 마녀와 거래하여 목소리를 사람의 다리로 바꿨던 인어공주가 있었다. 그녀는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며 왕자를 축복한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이 알고 있는 인어공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빠 트라이톤 해신이 친히 출정하시어 왕자와 함께 문어 마녀를 물리치고, 인어공주는 왕자와 결혼한다. 완벽한 해피엔딩이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는 매우 독특한 장면이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God from the Machine)라는 것인데 번역하면 ‘기계로부터 강림하신 신’ 정도 된다. 간단한 크레인 구조로, 도르래에 밧줄을 단 바구니에 사람을 태워 오르내리도록 한 것인데. 신의 등장을 나타낼 때 천상에서 신이 하강하는 모습을 표현할 때 사용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기독교 신학과 결별하고 인본주의를 추구하던 사람들은 인간처럼 서로 죽이고 질투하는 신들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끌렸고, 이를 소재로 오페라를 만들게 된다. 음악사상 가장 있기 있었던 소재는 무려 70여회 가깝게 소재로 쓰였던 오르페우스 신화인데, 악보가 제대로 남아있는 최초의 오페라도 역시 오르페우스 이야기다.

태양신 아폴로와 예술의 신 뮤즈 사이의 아들 칼리오페의 아들로 태어난 오르페우스는 할머니 뮤즈의 재능을 물려받은데다 할아버지 아폴로의 리라 개인교습까지 받아 음악의 신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님프였던 에우리디케와의 결혼생활 중 그만 에우리디케가 독사에 물려 죽자, 슬퍼하던 오르페우스는 지옥으로 향하고, 지옥의 뱃사공 카론과 문지기견인 케르베로스를 리라연주로 감동시키고는 지옥의 왕 하데스를 만난다. 역시 리라연주로 하데스와 부인 페르세포네를 감동시킨 오르페우스는 부인 에우리디케를 구출한다. 단 지상으로 나갈 때 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조건으로.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마지막 순간 뒤를 돌아본 오르페우스는 부인 에우리디케를 영원히 잃게 되고, 상심한 오르페우스는 지상으로 돌아와 모든 여자를 거절하다 못해 남색에 빠진다. 그리고 최후엔 디오니소스의 분노를 사서 여덟 조각으로 찢겨 죽는다.

당시 관객들에게 이 그로테스크한 결말이 맘에 들 리가 없었고, 더군다나 오페라 버전은 무려 결혼식 축하연 작품으로 기획되었으니 이대로 원작을 반영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수정된 판본에서는 뒤를 돌아봐서 에우리디케가 다시 지옥으로 끌려들어간 후 슬퍼하는 오르페우스 앞에, 태양신 아폴로께서 하늘에서 강림하사 원작을 과감히 바꿔주며 둘을 다시 맺어준다. 이후 바로크시대부터 현대까지 오르페우스 신화는 계속 오페라로 작곡되었고, 작품마다 하늘에서 내려와 구해주는 신도 태양신 아폴로에서 사랑의 신 아모르까지 변화무쌍하게 바뀐다.

신의 하강을 나타낼 때 쓰던 기계를 일컫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단어는, 이후엔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신을 개입시켜 결말을 인위적으로 바꾼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고. 이제는 원작과 다른 노골적인 해피엔딩을 부를 때 쓰인다.

그래서 스페인판 사도세자였던 미쳐버린 왕세자 돈 카를로스가 성벽에 갇혀 아버지를 저주하며 폭식과 설사로 죽었던 역사적 사실은, 쉴러의 사극에선 사랑하는 여인을 아버지에게 빼앗긴 비운의 왕세자로 각색되고, 베르디의 오페라에선 돈 카를로스가 천사의 영에 이끌려 사라지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슬픈 사랑의 대명사로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작에선 가사상태인 줄리엣이 진짜 죽은 줄 알고 무덤가에서 로미오가 음독자살하고, 깨어난 줄리엣도 로미오의 죽음을 보고 그의 칼로 자살한다. 그러나 샤를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결말을 아쉬워하던 작곡가의 염원으로 로미오가 죽기 전에 줄리엣이 깨어나 짧게나마 둘이 행복한 이중창을 함께 부를 수 있는 장면을 새롭게 넣었고, 함께 손을 잡고 죽어가는 엔딩으로 바꿨다.

유럽에선 해피엔딩을 헐리우드 엔딩이라고도 부른다. 노골적인 해피엔딩을 비꼬는 말인데, 10월 혁명으로 일가족이 총살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의 막내딸 아나스타샤의 이야기도 헐리우드 제작사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선 모두 살아남아 행복한 결말로 만들어져 심각한 역사왜곡 논란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바로크 오페라시대에도 데우스엑스 마키나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오페라 장르자체가 망할 뻔 하기도 했었다.

요즘 사극도 팩션(Faction; Fact+Fiction)이 대세다. 그래서 논란도 많다.
뭐든 적당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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