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모처럼 내린 봄비로 소소한 나들이를 포기했다. 거창한 계획을 세워 벚꽃 구경을 떠나는 것은 아니더라도 가까운 교외로 나가 화사한 봄꽃을 바라보며 향긋한 차 한잔과 따뜻한 봄볕 속에 묻히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집 안 창가에 앉아 토닥토닥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책과 하루를 소일했다.
그날 아침,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책 『자기만의 방』을 읽다가 올해가 그녀가 죽은 지 80주기 되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1941년 3월 28일, 20세기 영국 최고의 모더니스트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이른 아침 남편에게 산책을 다녀 오겠다는 메모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근처의 아우스 강가에 모자와 지팡이를 놓아둔 채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돌멩이를 가득 넣고 강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였다.
그녀가 내게 제대로 각인된 것은 1928년 가을 그녀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이를 토대로 쓴 책 『자기만의 방』을 접한 후부터다. 한창 젊고 패기 넘치던 시절에 우연히 읽은 후로 마음에 새긴 손꼽히는 책 중에 한 권이다. 페미니즘적 요소가 깃든 이 책은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적당한 돈이 필요하다며 정신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의 자립을 강조한 글이다.
학창 시절 내가 살던 집에는 방이 세 개였다. 안방에는 부모님과 어린 남동생이 쓰고 건넌방에는 한창 공부하는 오빠가 독차지했다. 그리고 남은 사랑방엔 할머니와 내가 살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내방이라기보다는 할머니의 방이라는 표현이 맞을 성싶다. 천장 높이 닿을 듯한 오래된 옷장이 있었고 할머니의 온갖 잡동사니를 집어 넣어놓은 칠 벗겨진 낡은 서랍장과 그 위로 이불을 올려놓은 것이 전부였던 작은 방이었다. 내 짐이라곤 학교에서 배우는 책 몇 권과 공책이 전부였다.
할머니는 언제나 초저녁에 잠을 주무셨다. 그 무렵 소설에 한창 재미를 붙인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불 속에다 손전등을 켜 놓고 책을 읽었다. 현대문학 전집을 가진 까칠한 부잣집 친구네 집에서 빌려온 책이니 밤새 읽고, 다음날 돌려줘야 했기 때문이다. 밤하늘이 내다보이는 네모난 창이 달린 벽면 아래 나무 향이 나는 책상을 놓고 환한 등불에 의지해 밤새워 책을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부족함 속에서의 절실함은 때때로 그 이상의 진가를 발휘할 때가 있다. 그때 읽은 문장들은 어느새 내 습작의 거름이 되고 훗날 글쟁이가 되게 한 그 이불 속은, 소중한 나의 첫 번째 방이었다.
어느 작가는 그가 거쳐왔던 수많은 방에 대해 어떤 방은 가난의 비참함을 일깨워주었고 또 어떤 방은 문학의 통로를 열어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그와 더불어 작고 남루한 그 수많은 방이 일러준 소중한 것은, 자신이 살고있는 실제의 작은 방보다 정신의 방이 넓어야 한다는 깨우침이었다고 한다.
지금 나는 그 시절 꿈꾸던 창문이 있고 결이 좋은 원목의 책상을 들여놓은 넉넉한 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눈으로 보이는 만큼 정신의 방도 비례해 넓은지 가끔 돌아본다. 오늘 만난 이들에게 혹여라도 이기심을 드러내진 않았는지, 누군가를 배려하는데 망설이지는 않았는지,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았는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것에 넓은 마음의 방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하리라 생각이 깊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