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마한의 중심 나주 예찬
[아침을 열며] 마한의 중심 나주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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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1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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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새벽을 가르며 찬란한 역사의 본향 나주로 향했다. 제일 먼저 나를 반겨준 것은 나주 배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선상역사(線上驛舍)였다. 나주역은 1913년 7월 호남선 개통에 따라 나주시 죽림동에 처음 건축되었다. 그 후 2020년 광주 송정과 목포를 잇는 호남고속철도 2단계 사업으로 나주역은 나주의 자연과 역사를 모티브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특히 나주 배와 나이테를 형상화한 비정형 돔 형식의 선상 역사로 증축하면서도 기존역사와의 연계성을 살려 개축을 최소화하였다. 기존역사는 업무시설로 활용되고, 상부의 세련된 여객시설은 직관적이고 편리한 동선을 자랑한다. 더욱이 학생 항일운동의 시작이기도 한 나주역 역사공원은 학생운동이 일어난 지 90년만인 지난 2019년에 나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을 세워, 학생들의 뜨거웠던 저항정신을 말해주는 듯 우리를 숙연케 한다.

영산강 유역은 기원전 2~6세기 중엽까지 ‘마한’이 지배하던 지역이다. 마한의 소국 연맹체 가운데 마지막까지 백제에 병합되지 않고 6세기 중엽까지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한 곳이 영산강 유역의 마한 세력이다. 따라서 영산강 유역권의 지자체에서는 ‘백제 이전에 마한’이라는 역사적 실체가 존재했다는 점을 부각하며 마한이 고대 해상왕국이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크다.

나주가 남도의 새로운 핫 플레이스(hot place)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산과 한강을 배산임수 지형으로 삼은 한양에 빗대 ‘작은 한양’으로 불렸던 나주다. 뒤로는 금성산이 자리하고 앞으로는 영산강을 두고 있다. 옛 나주읍성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지닌 '작은 궁궐' 금성관도 있다.

나주는 오래전 전라도의 행정과 경제·군사·문화의 중심이었다. 983년 고려 성종 때 설치한 나주목이 913년 동안 유지되었다. 당시 나주는 인구로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흥선대원군이 ‘나주 가서 세금 자랑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세금을 많이 냈다고 한다.

고대 영산강 문화를 꽃피웠던 나주는 크고 작은 문화유적을 곳곳에 품고 있다. ‘천년 목사고을’ 나주는 고려 성종(983년) 때 설치한 12목 가운데 하나였던 나주목(羅州牧)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나주읍성은 고려시대 왜구방어를 위해 나주목의 읍치에 흙을 다져 쌓는 고도의 기술인 판축기법으로 쌓은 토성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돌을 이용한 석축성으로 고쳐 쌓았으며, 1456년에 지금의 규모로 크게 확장하였다. 성벽의 길이는 약 3679m, 너비 6m이다. 면적이 97만4390㎡로 수원화성보다도 두 배나 넓다. 부속 시설물로는 4개의 성문으로 동점문(東漸門), 서성문(西城門), 남고문(南顧門), 북망문(北望문)이 있다. 그 외에 옹성 4개, 치 7개, 수문 2개와 행정을 맡아 보는 객사 및 동헌 등의 건물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북벽 및 남동벽의 일부 구간만 구릉을 이용하고 대부분은 평지를 가로질러 쌓은 평지성으로서, 전체적인 형태는 남북으로 긴 타원형에 가깝다. 이러한 지형조건에 맞추어 쌓았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읍성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먼저 찾아간 곳은 금성관. 나주목의 객사로 사신과 관리들이 묵어가던 곳이다. 1976년 해체하고 다시 지었다. 나주목문화관 옆에 있는 목사내아(牧使內衙)는 나주 목사의 관저이면서 살림집이다. 거문고 소리에 학이 춤을 추는 곳이라고 금학헌(琴鶴軒)이라 불린다. 지은 지 200여 년이 되었다. 세월의 두께가 묻어난다. 그만큼 아늑하고 평온한 느낌을 준다.

나주의 역사와 함께 내아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지켜봤을, 벼락 맞은 팽나무가 의연하다. 벼락을 맞아 파인 곳을 황토로 봉합하고 사슬로 묶어 지탱하는 수술을 받았다. 벼락 맞은 이 나무가 예부터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전해진다. 나도 살짝 눈을 감아본다. 봄 햇살이 따사롭다. 상큼한 꽃향기에 걸음이 가뿐하다. 금세 나주시청 앞에 당도했다.

영산강 중류에 위치한 나주시는 거대한 고분군이 밀집된 곳이다. 영산강 유역의 고대 역사문화는 고인돌로부터 시작되는 역사 속에서 마한의 역사문화 중심에 있다. 마한 유적과 관련이 깊고 출토된 물고기 장식 금동신발, 용머리 장식 금동신발 등 국보급 유물은 물론 유구 역시 당시의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나주시에서는 ‘나주읍성 종합정비계획 수립용역’과 ‘나주 마한 역사문화 조사‧연구 및 정비계획 수립용역’ 제안서 평가위원회를 열었다. 이에 평가위원으로 참여하여 유적의 보존과 사적지 주변 주민들이 함께 공존하며 합리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적극적인 활용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사적지의 보존 및 활용에 대한 중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조선시대 읍성은 물론 그 시대의 문화적 자원이 밀집된 관광자원으로서의 문화관광 자원화의 구심 축을 마련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도록 했다.

고대 낙동강에 가야가 있었다면, 영산강에는 마한이 있었다. 영산강 유역에서 기원전 3세기부터 4세기까지 독자 정치체계를 형성했던 마한의 역사를 되찾고 유적을 보존하는 작업은 미룰 수 없는 이 시대 후손들의 사명이다.

귀갓길에 우리 고장 청주읍성을 떠올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결국, 지역의 미래는 지역 곳곳에서 숨 쉬는 전통과 문화유산의 가치를 되짚어 미래의 방향성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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