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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왜, 당신은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싶었던 것인가?

홍만표 충남도 국제통상과장·지역정책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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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1.27 18:1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홍만표 충남도 국제통상과장·지역정책학박사

정치란 무엇인가. 비스마르크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했다. 정치란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라고 흔히들 말하곤 한다. 거기에 참여하는 것부터 '가능성이라는 삶의 형태를 정하는 종합 예술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 한다. 과연 우리나라의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은 피고 있는 것인가 되묻고 싶다.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율을 보면 1995년 제1회 68.4%를 제외하고는 모두 50% 전후에서 맴돌고 있다. 이러한 반쪽짜리 대의제는 정치 불신을 일으켜 유권자를 정치로부터 이탈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가 안정될수록 유복한 사회로 전환되는 이른바 ‘성숙사회(데니스 가볼르=Gábor Dénes, 정신적 풍요와 안정을 추구하는 사회를 의미)’에 다다르게 되면 정치에 관심이 무뎌지는 것은 각국의 일반적이고, 공통된 사항이다. 루소는 ‘인민주권’이 어느 시대이든 기본이며, 시민의 자유로운 민주적 토의(deliberation)를 전제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러나 실제로 의회 정치에는 토의는 있어도 유권자인 시민과의 토의는 거의 없다. 이런 부분들이 정치 불신을 야기하는 근원적 문제다.

좋은 민주주의는 세 가지 축으로 이뤄진다. 대표에 의한 의회 정치와 시민의 토의(또는 대담 discourse), 그리고 양자의 대화가 바로 그것이다. 건전한 의식을 지닌 시민사회가 끊임없이 정치에 참여할 때에만 좋은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는 의미다. 이를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라고도 한다. 참여민주주의는 지난 1970년 후반 서구에서 태동했다. 60~70년대 서구는 균열의 시대였다. 당시 서구는 미국의 베트남전을 비판하는 반전 활동을 비롯해 환경과 인권, 性 등 새로운 가치를 요구하는 신 사회운동이 등장했다. 기존 정당들은 당혹스러웠다. 전통적으로 사회민주주의자와 자유주의자만을 대표했던 정당들에게 性과 환경 등의 가치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존 정당들은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대변할 수 없었으며, 이로인해 정치와 시민사회의 모순은 점점 커져만 갔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고민된 것이 바로 ‘토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토론을 통해 정당의 대표성을 복원시키자는 의도였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토의민주주의를 ‘의회정치와 시민사회정치’에 의한 두 통로의 토의로 정의했다. 거칠게 정리하면 토의민주주의란 대의제 민주주의에 내제한 대표성의 결함을 시민 참여로써 보완하자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참여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대안이 아니란 점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다 좋은 민주주의로 만들자는 목표다.

여기에서 핵심은 시민 참여에 의한 토론이다. 시민 참여는 단순히 의견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정부 예산 편성에도 참여하는 적극적 의미를 지닌다. 전 세계적으로 시민참여예산(Citizen Participatory Budgeting)이 주목받는 이유다. 시민이 예산편성에 참여하면 어쩔 수 없이 정치권과 대화를 하게 된다. 시민의 의견을 보다 분명히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는 평가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초 무렵부터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됐고, 2011년 지방재정법이 제정되며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입이 의무화 되었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오늘날 대부분 국민국가는 간접민주주의 제도를 택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전원 참가하는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간접민주주의 제도에서 선거로 선출된 대표는 의회에 참여해 의사결정을 행한다. 이것을 의회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법만으로 좋은 민주주의가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참여민주주의의 원동력은 법이나 정부로부터 주어지는 게 아닌 아래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지방자치 무관심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이다.

1924년6월 제3차 에베레스트 영국 원정대에 참가하여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최고봉에 올랐다고 전해져 오고 있는 말로리(George Herbert Leigh Mallory)는 "왜, 당신은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싶었던 것인가?"라는 질문에 "거기에 에베레스트가 있기 때문에 (Because it’s there.)"라고 대답했다고 하는 일화에 빚대어 말하자면, 늪에 빠진 반쪽짜리 대의제를 구원하기 위해서는,‘모든 시민이여,토의에 참여하라! 왜냐하면 거기에 민주주의가 있기 때문에'

P·S :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졸필이나마 충청포럼에 또다시 오피니언으로 출몰하게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인류사에 있어서도 자유로움을 되찾는 해로 기억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리고 아래는 설날을 앞두고 우리동네 명산인 용봉산 중턱에서 내포시를 바라보며 시를 써보았습니다.

용봉산의 魂
-어머니 품-

(達泉 洪萬杓)

하늘을 휘어 감아 나르는
천년의 용봉들이여
산은 우리들의 어머니 마음

내포의 하늘을 날으는 용들아 !
백제의 혼을 품어 온 봉황을 아느냐

새벽녘에 창을 열면
바람 타고 들어오는
용봉사 목탁 소리 …
그 소리 천년동안 이어져
魂들이 오고 가는 길목을 만드니

어머니 품속같은 나의 용봉산아
난 백제의 천년 바람과 살아가리라.
살아가리라. 나의 용·봉·산이여 …

아 아 구룡의 마음이여
아 아 봉황의 품속이여

아 아 내포의 하늘이여
아 아 용봉의 구룡대여

백제의 천년 혼을 깨워라.
불어라 불어라 불어제쳐라.

아-아 참으로 시원하도다.
미래에서 영원히 불어다오

그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라.
아-아 나의 용봉의 바람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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