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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굴레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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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9.05 14:58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농번기다. 시골의 여름은 새벽부터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인데도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다.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는 내게는 한밤중인데.

시골 사람들이 바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억 저편의 기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여름이 되면 엄마는 새벽부터 밭으로 향했다. 식전 일을 해야 덜 덥다며 어둠이 깔린 길을 내달아 밭으로 갔다.

햇살이 머리 위에 비칠 때 돌아오신 엄마는 온몸이 땀에 옷이 흥건히 젖은 지쳐 모습이었다. 미리 준비해둔 아침밥을 차려서 우리를 등교시키고 다시 밭으로 향했다.

장마철이다. 비가 온 후 쑥쑥 올라오는 잡초 때문에 손이 바쁘다. 손녀를 보느라 차일피일 미룬 꽃밭의 잡초는 꽃인지 풀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자라있다. 딸이 오는 날을 택해 제초작업을 해야 한다.

작물이 크는 속도는 잡초가 자라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풀 뽑기 힘들어 고랑까지 비닐로 덮었는데 틈새를 비집고 나온 풀을 뽑자니 너무 크게 자란 풀이 나를 이기려 한다. 풀을 뽑다가 몇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는다. 넓게 자리한 풀이 바랭이 풀인가. 난 풀 이름은 모르는데 엄마는 “이놈의 바랭이 풀은 왜 이렇게 잘 자라는겨?” 하던 말씀이 생각난다. 지금도 풀 이름은 모르지만 넓게 자리한 풀이 바랭이 풀이라 생각하면서 엄마를 떠 올린다. 농사일이라고는 일도 알지 못하는 내가 귀촌하면서 자주 엄마를 생각한다. 어렵던 그 시절 일하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족들 먹거리로도 부족한 농사일에 어떤 희망으로 살았을까. 농사로 수입이 나는 것도 아닌 텃밭 가꾸기도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손녀를 양육하면서 심는 작물 수를 줄였다. 아이 돌보는 일이 손이 많이 가기도 하지만 혹시나 다칠까 염려가 되어서다. 며칠 전 옥수수가 영글었는지 까치들이 떼로 몰려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좋은 것만 골라서 쪼아 먹는다. 아기와 밭에서 뒹굴며 심은 것인데 까치에게 빼앗길 수 없어 수확했다. 옥수수를 손수레에 싣고 아기를 그 위에 태우니 좋아한다. 잘 놀아 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일을 마쳤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기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벌레가 물었나 보다. 부기가 내려가지를 않아 결국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아 와야 했다. 아기가 아프니 당황도 되고 마음이 아려온다. 말도 못 하는데 얼마나 힘들지 생각하니 눈물이 흐른다. 딸에게 이야기했더니 괜찮다고 하는데 잘못 돌본 거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딸의 마음이 아플까 봐 신경도 쓰인다. 제 손으로 키우지 못하니 마음이 아파도 내색도 못 할 거라는 생각에 이래저래 내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엄마는 자식에게 전생에 진 큰 빚을 이생에 갚기 위해 왔나 보다. 자식 일이라면 벌벌 떠는 걸 보면. 고집 세고 하고 싶은 것은 하고야 말던 나는 엄마에게 난 늘 버거운 딸이었는데 감사하게도 내 딸은 엄마를 먼저 생각하고 아기 맡겨놓은 것에 대해 미안해한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순조롭게 아이를 낳아 내게 안겨주었으니 감사한 일 아닌가. 손녀를 보는 게 힘들고 지쳐도 또 한 번 엄마 노릇을 하게 해 주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기를 키우며 누리는 소소한 행복 앞에 손녀를 안아보지도 못한 채 떠나신 엄마가 점점 더 많이 생각나는 것 같다.

한 성질 하는 딸만 결혼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던 엄마. 동생들이 있는데도 나를 철부지로 생각했나 보다. 효도는커녕 내가 사는 모습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작별해야 했던 그때 마음이 다시금 아프게 다가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새록새록 더 엄마가 생각나는 걸 보니 나도 늙나 보다.

아기를 돌보며 엄마의 책임은 언제까지일까 생각해 본다. 외동딸이라고 크게 잘해준 것도 없지만 마음은 딸 바라기로 살아온 세월. 이제는 모든 것을 놓고 나만 생각하고 살아야지 하는데 어느새 마음은 딸에게로 가 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산 세월이 40년이 넘는데 나로 살아온 세월은 얼마일까. 다른 사람보다는 자유롭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언제나 딸에게만큼은 벗어나지 못하는 나.

요즘 할머니들은 아기 봐 주는 걸 꺼린단다. 내 자식 키우느라 고생했는데 손주까지 봐주면 본인의 인생은 없다고. 손주를 본 어느 할아버지가 당신 아내가 그런다면서 나보고 대단하다고 한다. “내 새끼 보는 건데 뭐요.” 하니까 요즘은 손주 봐주는 일을 안 하려고 한단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자식 일에 물불 안 가리는 바보 엄마인가.

요즘 젊은 애들은 우리보다 배움이 많고 전문직에 종사하는데 별다른 일을 안 하는 내가 아기를 봐주면 저는 좀 마음 편히 직장에 충실할 수 있겠지. 배움을 사장하기보다는 활용하고 살아야 그동안 애써 공부한 보람이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이기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숨어 있다.

언제까지 엄마로 살아야 할까. 가끔은 이렇게 사는 게 굴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굴레에서 벗어나야지 하면서 끌려다니는 엄마라는 굴레. 누가 씌어준 것도 아닌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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