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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예술인의 스테레오 타입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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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4.03.04 16:0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영화역사엔 쿨레쇼프 효과(Kuleshov Effect)가 있다. 러시아 영화제작자인 쿨레쇼프가 1910년도에 발표한 것인데 한 남자 배우가 무표정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3초짜리 영상으로 사람들의 인지 변화를 실험한 영상이다.

따뜻한 수프 접시가 나온다, 곧이어 3초짜리 무표정한 남자 영상이 나온다. 그러면 관객들은 남자가 배가 고프다고 생각한다. 다음 실험에선 관속의 아이 사진이 나오고 같은 남자 영상이 또 3초간 나온다. 관객들은 죽은 아이 생각에 슬퍼하는 남자라고 답한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여인의 사진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관객은 남자가 관능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작 이 남자 배우에게 들어간 주문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는 것’ 이었는데 연이어 붙인 장면에 따라 관객들은 자의적으로 의미부여를 했던 셈이다.

2000년대 들어 새로운 실험도 있었다. 한 중년 남성의 프로필 사진 촬영을 여러 명의 사진작가에게 주문했다, 다만, 작가들에겐 따로 이 중년 남성의 직업을 전부 다르게 알려줬다. 살인자. CEO, 어부, 원예가 등등.

남자의 직업을 살인자로 전달받은 사진작가는 모델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여 사진을 찍었는데 암울한 느낌이 나왔고, CEO로 전달받은 작가는 활기찬 에너지와 자신감 있는 미소를 포착해서 담아냈다. 어부라고 전달받은 작가는 굵은 주름이 돋보이게 거친 질감으로 담아냈는가 하면 꽃을 다루는 원예가로 알고 찍은 사진엔 꽃이 없음에도 화사한 색감과 선명한 대조가 주목받는 사진으로 찍는 등 하나같이 전달받은 직업의 전형적인 질감과 개성으로 모델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이렇게 고정관념으로 어떤 대상을 정의하는 것을 우리는 스테레오 타입(Stereotype)이라고 부른다. 많이 쓰는 글자들을 미리 고정해서 (stereo) 찍어놓은 조판(type)이라는 뜻이다. 같은 걸 연속해 찍어낸다는 의미로 일부만 봐도 나머지 찍히는 글자가 유추되기에 지레짐작하는 걸 그렇게 부른다.

스테레오 타입은 대개는 부정적으로 사용된다. 특정 인종이나 국가를 폄하하거나 근거 없이 낮잡아 볼 때가 대표적이다. 이를테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스핑크스를 놓고 근거 없는 외계인 건설 음모론 따위가 그것인데, 이건 기원전 수천 년 전에 저 이집트 사람들이 저런 장대한 건축물을 만들었을 리가 없다는 서구인들의 인종차별적인 비아냥거림이 반영된 것이다.
또 특정 직군을 근거 없이 폄훼하기 위해서도 많이 쓰인다. 대표적인 예가 예술인들이다. 예술인들의 이미지는 보통 감정적이고, 일상적이지 않은 사고방식을 가진 좌충우돌 걷잡을 수 없는 통제 불능의 기질쯤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예체능 직군의 사람들 행동 결과는 보통 ‘저럴 줄 알았다’ 정도로 뭉뚱그려진다. 그 반대의 예는 더더욱 유난스레 다룬다. ‘예술하는 사람답지 않게 얌전하네’. 그래서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예술인들은 비범을 넘어 괴팍한 괴짜쯤으로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예술인들에 대한 지극히 보편적인 스테레오 타입은 강요된 모습이다.

전체 음악에서 단 한마디, 그것도 네 번째 박에 걸쳐있는 음표 하나가 해결이 안 돼 몇 시간씩 연습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피아노나 현악기라면 인대가 끊어질 듯한 반복연습을 요구하고, 타악기라면 자신의 박자 감각을 저주하며 온종일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계속 반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성악에서 이야기하는 고음이라면 그걸 해결하는 데는 근육과 감각을 조율하기까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예민한 작업 뒤에 시달린 모든 감각을 내려놓고 전원을 꺼버리는 듯 보이는 쿨링타임은 일반인이 보기엔 극과 극의 종잡을 수 없는 모습으로만 보인다.

전체 음악에서 음표 하나의 해결방법을 가지고 몇 시간, 며칠, 그리고 몇 년을 다루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악곡에서도 같은 민감도의 정밀함으로 반복연습을 했을 사람들이니 말해 무엇하랴. 그런 정밀하고도 섬세한 조합으로 음표 하나, 쉼표 하나를 다루어야 시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래서 같은 곡을 연주해도 프로와 아마추어의 극명한 차이는 ‘그저 지나칠 수 있는 것’ 에 대한 허용범위가 다른 까닭이다.

예술은 보통의 것을 갈고 다듬어 비범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모든 것을 비범히 다루어야 하는 예술인의 모습은 그래서 예민 덩어리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좋은 평가 하나에 그 겪었던 모든 괴로움을 기꺼이 반복하기를 택하는 사람들이다. 모든 전문가는 자신의 분야에 까칠하기로 작정한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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