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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냄새와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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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1.21 16:0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정 호 백제문화원장
입원한 친구 문병 차 병실에 갔더니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약 냄새가 많이 나네. 머리 안 아파?” 걱정스레 물었더니, 환자가 응답한다. “나는 고장 나 냄새를 못 맡아.” 사람에게는 오각(五覺)이 있다. 그 중 만약 버리라면 어떤 순서로 버릴 거니? 친구는 후각, 미각, 청각, 촉각, 마지막으로 시각을 꼽았다. 환자가 맨 먼저 버릴 수 있다는 후각, 후각은 냄새를 느끼는 지각이다. 냄새는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을 일컫는다.
 
 빵집과 커피 점 앞을 지날 때면 빵 굽는 냄새와 커피 끓이는 냄새가 천천히 걷게 만든다. 작년에 미국 연구진이 사람의 코로 1조 개의 냄새를 식별 가능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존재하는 물체마다 농도가 짙은 냄새에서부터 약한 냄새에 이르기까지, 고유한 냄새가 있을 터. 참외 냄새, 수박 냄새, 청국장 냄새, 오징어 냄새, 새우젓 냄새, 발 냄새, 입 냄새, 땀 냄새, 구린내, 비린내, 단내, 탄내……. 시골이 고향인 사람은 흙냄새, 땅냄새를 잊지 못한다. 냄새는 기억된다. 냄새는 하염없는 그리움이다.
 
서양 사람에게는 노린내가 나고, 한국 사람에게는 마늘 냄새가 난다. 체취는 인종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다. 동물의 세계에서 어미는 냄새로 제 새끼를 구별한다. 냄새가 짝짓기의 신호가 되기도 한다. 냄새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의 매체다.
 
후각은 자극이 오래 지속되면 순응하며, 소실된다. 태국에 가면 두리안이라는 과일이 있다. 노란색으로 맛있어 보여 샀다가 냄새가 심해 못 먹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냄새에 익숙해진 태국 사람들은 두리안을 과일의 왕이라고 부른다. 농부가 거름 냄새에 익숙하고, 기계조립기술자가 기름 냄새에 익숙하듯이. 익숙한 냄새와 낯선 냄새는 그런 것이다.
 
와인을 시음할 때 제일 먼저 냄새를 맡아 보고, 그 다음 빛깔을 보고, 그리고 맛을 본다고 한다. 인류는 냄새를 맡고 그것이 상했는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인지 판별하며 생명을 지켜왔다. 후각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정확하다. 냄새는 여자가 더 잘 맡는다!
 
냄새는 어떤 낌새나 조짐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비하적인 표현으로 수상한 의심이 들 때 “냄새가 난다”고 한다. 음모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사람들은 썩은 냄새, 고약한 냄새를 싫어한다. 악취민원(惡臭民怨)이라는 행정용어도 등장했다. 탈취제를 개발해 역한 냄새를 차단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구취제거 약품만 해도 수십 가지이다. 반대로 유쾌한 냄새를 좋아한다. 꽃이나 향에서 나는 좋은 냄새를 향기라고 한다. “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 꽃내음은 꽃에서 나는 향기를 운치 있게 이르는 노랫말이다, 라일락 향, 자스민 향, 박하 향, 아카시아 향, 밤꽃 향, 허브 향 등등 향기는 감각을 자극한다.
 
사람들은 향기에 들떠, 향기를 빌려다 쓴다. 천연향이든 인공향이든 합성향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향기 상품이 다양하다. 화장품, 방향제, 향수, 비누, 샴푸, 치약, 의류, 가구 등등 향기를 두르지 않은 것이 없다. 어느 노래방에서는 숲속 분위기를 꾸미고, 솔향기를 뿜어 준다.
 
향기 나는 말, 글, 태도를 요구한다. 향기를 마구잡이로 붙여댄다. 여자의 향기, 남자의 향기, 바다 향기, 겨울 향기, 문화의 향기, 예술의 향기….
 
어원은 모르지만 뒤죽박죽 쓰던 글귀가 떠오른다. 
 
화향백리 주향천리 인향만리
(花香百里 酒香千里 人香萬里)
난향백리 묵향천리 덕향만리
(蘭香百里 墨香千里 德香萬里)
 
냄새에 대한 표현은 개인차가 크다. 후각이 아프다. 비흡연가는 담배 냄새라고 하고, 흡연가는 담배 향기라고 한다. 없는 자는 돈 냄새라 하고, 있는 자는 돈 향기라고 한다. 누구는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하고, 누구는 ‘사람 향기’ 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무색무취(無色無臭)는 어떠냐고, 병실에 누워있는 친구가 하얗게 웃는다. 마취제와 진통제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
 
화장실에 ‘냄새 먹는 하마’가 놓여 있더니, ‘냄새를 보는 소녀’ 웹툰을 드라마로 만든단다. 냄새를 시각적 입자로 볼 수 있는, 초감각 소유자다.
 
구상유취(口尙乳臭), 젖내 난다고, 때리지 마라. 큰코다친다.
 
“똥 싼 봉지에서는 똥냄새가 나고, 향 싼 봉지에서는 향냄새가 난다.”
 
나라 구석구석에 위험한 냄새가 스멀거린다. 2015년, 벌써 스물두 날이 지났다. 봉지에 무엇을 주섬주섬 담으셨는가? 어떤 냄새를 보려고 그러시는가?
 
 김 정 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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