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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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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6.17 19:08
  • 기자명 By. 충청신문

“대전에도 천연기념물이 있는가?” 한밭수목원을 산책하다가 ‘천연기념물센터] 이정표를 보고, 친구가 묻는다.

대전에도 천연기념물이 한 건 있다. 최초이자 유일한 천연기념물 '괴곡동 느티나무'가 그것이다. 내친 김에 천연기념물센터를 관람하고 괴곡동을 찾았다. 천연기념물 제545호(2013.7.17.지정). 수령 약 700년, 높이 16m, 둘레 9.2m. “마을에서 오랫동안 마을의 수호목으로 여겨 매년 칠월칠석에 칠석제를 올릴 만큼, 주민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그 문화적 가치가 크며, 나무의 규모나 수령, 수형 면에서 천연기념물로서 손색이 없다.”는 게 지정 사유다.

천연기념물은 식물, 동물, 지질·광물, 천연보호구역으로 나누어지는데, 현재 등재된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은 455건이다. 노거수(老巨樹)가 가장 많다. 그 중 느티나무도 19건이 검색된다. 느티나무는 문화유산에서 비중을 갖고 있다.

괴곡동 700년! 조선이 세워지기 전에 태어난 셈이다. 장구한 역사를 품은 살아 있는 생명문화재다. 무게를 지탱하기 어려워 철제 받침과 연결고리를 설치하고 있다. 재해나 기후변화에 따라 사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 나무의 유전자 보존을 위해 DNA를 추출하거나 나무를 복제하여 육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은행나무, 회화나무 등 6종 26그루를 대상으로 하는데, 그 중에 괴곡동 느티나무도 포함되어 있다. 머지않아 괴곡동 느티나무의 우량 유전자 복제나무를 볼 수 있으리라.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도처에 자라는 친숙한 나무다. 마을마다 마을나무, 둥구나무가 있다. 둥구나무는 정자나무다. 우리나라 3대 정자나무로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를 꼽는데, 그 중 80%가 느티나무라고 한다. 느티나무 아래서 바둑도 두고 장기도 두고 고누도 두었다. 그네줄을 매기도 하고, 술래잡기를 하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옛날얘기를 듣기도 했다. 정월 보름이나 마을 제사 때에는 당산나무, 신목(神木)이기도 했다.

노거수는 밑둥에서부터 범상치 않다. 크기도 하려니와 기괴한 형상이 인간을 압도한다. 노거수 앞에 서면, 인간이 참 왜소하게 느껴진다. 오만과 편견, 분노와 거짓, 탐욕과 어리석음이 잦아든다. 노거수에는 신성한 영혼이 깃들어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주술 담은 울음소리 섞인 울부짖음이 들리기도 한다.

느티나무는 넉넉한 풍채를 지녔다. 수명이 길고 수형이 단정하며 수관폭이 넘어 휴식처로 적합하다. 느티나무는 바람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고 성장속도가 빠르다. 바람에는 강하나, 대기오염에는 약하다. 매연에 노출되는 것이 걱정스럽다.

오래된 마을 나무는 보호수로 관리하고 있다. 마을 나무는 경계목이기도 하다. 멀리서도 눈에 잘 띤다. 초등학교 교정에도 느티나무가 있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느티나무는 아름답다.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모양이 둥글고 수형이 웅장하다. 여름에는 그늘을 제공하고, 가을에는 황금색이거나 갈색 단풍을 펼친다.

느티나무는 재질이 좋아 고급 가구 등에 쓰임새가 많다. 출토된 삼국시대 관재에 느티나무가 많다. 목조문화재 중 고려시대 55%, 조선시대 21%가 느티나무라는 분석도 있다. 느티나무 기둥은 내구성이 뛰어나 소나무가 100년을 버틴다면, 300년을 버틴다고 한다. 전통 문화재 복원에 양질의 느티나무가 있어야 할텐데, 턱없이 부족하단다.

액운을 막아준다는 마을의 수호신, 마을 나무들은 새마을 사업을 하느라, 아파트를 짓느라 무수히 잘려졌다. 어찌보면 느티나무는 우리 민족의 버팀목이었다. 잎이나 가지를 꺾는 것을 금기시했다.

느티나무는 쉼터다. 지금 우리는 쉴(休) 그늘이 없다. 느티나무 아래서 낮잠을 자 보았는가? 그 때 살랑이는 바람 맛을 기억하는가? 에어컨이 따를 수 없는 시원함!

느티나무는 한자로 괴(槐)를 쓴다. 이에 유래된 지명도 있다. 충북 괴산군, 대전의 괴곡동, 괴정동 등이 그렇다. 맛집 이름에 느티나무집이 정겹다.

나무가 크면 그늘도 넓다.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나무, 든든하고 우람한 나무가 그립다.

느티나무는 ‘늦티나무’다. 어릴 때는 볼품없지만, 클수록 나이를 먹으면서 늦게 티가 나는 나무다.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주면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깨끗하고 품격이 있다. 수많은 세월, 무엇을 떠받치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에는 몇 백 년 된 느티나무가 많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가면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나무, “내가 어렸을 적 나 살던 동네에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 있었지.”

어수선하고 고단한 올 여름, 느티나무가 그립다.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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