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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에] 어린왕자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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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3.20 13:4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허 영 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1학기 개강이 벌써 3주차에 접어든다. 헌데 올해는 유난히 연초부터 많이 지친다. 무얼까? 왜 이리 마음이 힘들지, 그 이유가 스스로 궁금하다. 나만 지치는 것인지, 또한 막연히 불안해진다. 내 삶이 많이 무의미하고 안개 속이 되어버렸다.   

돌이켜보면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많은 의미를 찾는 것은 힘든 일이다. 늘 해오던 일, 익숙해져 버린 일 때문에 그 속에 작은 의미가 있다 해도 쉽게 지나쳐 버리는 게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의 수많은 행동들 모두가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어린 왕자’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섯 개의 소혹성 사람들에 대한 주인공 중 어린 왕자의 생각을 보면, 그는 다섯 개의 소혹성에 사는 사람들 중 ‘가로등을 켜는 사람’만을 유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 이유는 적어도 그가 행하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로등을 켜는 사람뿐  아니라 나머지 다른 소혹성에 사는 사람들 또한 그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린 왕자와 같이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누군가의 삶이 유의미한지 무의미한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이 저마다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기호가 다른 것처럼, 일상 속 모든 행동이 지닌 의미도 다르다. 의미는 부여하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소혹성에 사는 허영심이 가득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찬양 받고 그것에 답례하기 위해 자신의 하루를 보내고, 남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고 생각한다. 그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인간과의 사귐을 위한 노력’이 있다. 다만 그 방법이 조금 특이할 뿐이다.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려 하는 이 행동은 결코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사귀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당연한 것이다. 허영심이 많다고 해서 사람들과 사귀지 말아야 하는 법은 없다. 그가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그는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다. 연습한다고 한들, 결국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별에서 쓸데없는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당사자는 더 큰 행복과 미래를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을 하는 과정 속에서 깨닫고, 생각하고, 보람을 느끼며 성장과 성숙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결과가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그 과정 속에서 그가 했던 모든 행동들은 훗날 그의 삶에 좋은 경험이 되고, 추억이 되고, 삶의 밑거름이 된다.

인생 속에서 무의미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인생 자체가 유의미한 일이기 때문에 인생 속의 모든 일 가운데 무의미한 일이 존재할 수가 없다. 모든 행동과 일에는 숨겨진 의미가 반드시 존재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유의미하기에 자신의 인생이 빛나고 더욱 소중하게 된다.

날씨도 화창하고 적당히 쌀쌀한 요즘 같은 날씨에는 일주일 내내 산으로 이른 초록의 향연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바쁘고 힘들고 지친 나날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를 꿈꾸고 싶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터팬과 같이 동화 속에 존재하는 환상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처럼 4차원적인 방법만으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보편적인 인간의 순수한 행동들은 패턴의 변화로도 얼마든지 도피가 가능하다.

대부분 승용차로 출 퇴근하던 내가 어느 날 마을버스를 타고 낯선 정류장에서 내려 무작정 길을 찾아 걸어가 보았다. 덕분에 평소에 익숙했던 거리의 모습이 아닌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낯선 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런 낯선 거리의 모습을 보면서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으며 왠지 모를 긴장감도 맴돌았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행동의 패턴을 살짝만 바꾸어 보았는데  나름 색다른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일종의 나의 일상에서의 작은 도피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익숙한 것’으로 부터 떠나 ‘새로운 것’을 느끼는 것은 도피이다.

그 이유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동화 속 앨리스와 웬디가 느꼈던 감정들을 내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앨리스와 웬디가 이상한 나라, 네버 랜드에서 느꼈던 그 벅차오르는 감정들과 두근거림은, 낯선 거리를 걸으며 새로운 풍경,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며 내가 똑같이 느꼈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어디론가 떠나고,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만이 도피는 아니다.

도피라는 미명 아래 바쁜 나날이라는 경로를 조금만 벗어나보면 더 넓은 세상과 미처 알지 못 했던 일상속의 아름다움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래, 올해는 많이 버리고 많이 비우는 연습을 하는 내가 되고 싶다. 그리고 더욱 행복해지는 연습을 해야겠다.
                 

허 영 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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