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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향기를 찾아서1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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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2.19 16:0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혜 숙 수필가
[충청신문=이혜숙 수필가] 환한 미소로 반긴다. 동심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글을 명찰처럼 가슴에 달고 오는 이들에게 반갑게 마음의 손을 내민다. 탁하고 어지러웠던 마음이 그를 보는 순간 정화되어 깨끗해지는 것 같다. 그와의 만남으로 가슴에 환한 빛이 들어오는 것 같다.
 
갈대가 바람에 일렁이고 새가 노래하며 낯선 방문객을 반기는 곳 순천만. 갈대 둑길을 걸어서 정채봉 문학관을 찾았다. 떠나기를 좋아하는 선생님과 글 도반이 함께 간 곳에서 반가운 이를 만났다. 이곳을 자주 왔지만 그분의 문학관이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문학엔 관심이 없고 불심으로 가득 찬 마음에 사찰순례만 하고 다녔기 때문일 게다. 
 
뜻밖의 조우였다. 평생 동화를 쓰셔서 그런지 얼굴에는 동심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 표정이 얼마나 편안한지 보는 사람도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 같다.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사신 분이라 그런가.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질 만큼 정말 기분 좋은 인상이다.
 
‘그는 1946년 순천시 해룡면에서 출생하셨다. 그와 여동생을 낳고 어머니는 스무 살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외면하고 일본으로 이주하여 거의 소식을 끊다시피 해서 할머니가 정채봉 남매를 키우게 됐다. 아버지를 원망하며 힘들게 산 그가 결혼 후 첫 아들을 얻고서야 아버지를 받아들였을 만큼 마음의 큰 상처로 남았다. 외로웠던 어린 시절 탓일까? 생각 많은 아이로 자랐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대신 자연과 벗하면서 정서적 부자가 되었다 한다.’ 
 
“나의 신앙은 동심이다. 흔히들 동심을 아이 마음으로만 말하나 나는 한걸음 나아가 영혼의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이 동심으로 우리는 악을 제어할 수 있으며 죄에서 회귀할 수 있으며 신의 의지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영혼의 공향구현이 나의 작품세계의 기조이다.” 그의 말에 나도 깨끗한 마음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늦었지만 나에게 오래 전에 잃어버린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선물하고 싶다.
 
‘전설의 기본적인 바탕 위에 스토리텔링 작업을 통해서 동화를 썼지만, 생각대로 작품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원고지를 구겨 휴지통에 버렸다. 부인은 방을 치우다 구겨진 원고지에 쓴 글을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구겨진 원고지를 다리미로 다려서 책상 위에 다시 펴서 올려놓았다. 정채봉은 부인의 속 깊은 행동을 보고 감동을 받고 오세암을 완성시켰으며, 그 이후에는 원고지를 구겨서 휴지통에 버리지 않았다.’ 전시실에 있는 글을 읽으며 훌륭한 작가 뒤에는 훌륭한 내조자가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부부가 서로 이해 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천생의 인연이 만난 것이리라. 두 분의 모습이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뭔지 모를 전율이 느껴진다.
 
전시실 한쪽에 ‘하늘로 보내는 편지’란 글자 아래 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정채봉 선생님께 편지를 쓰라고 만든 곳이다. 뭔가 할 말이 많을 것 같아서 펜을 들었다. 순간 감정이 복받친다. 이게 뭐지? 눈물이 나려 한다. 잠시 자리를 떠났다 다시 돌아와 쓰려고 했지만 도무지 쓸 수가 없다. 몇 번을 시도하다가 결국 쓰지 못하고 돌아섰다.
 
돌아 나오는 문 옆에 그가 서 있다. 가을 단풍을 뒤에 지고 긴 코트를 걸치고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와 작별한다. 2001년 간암으로 별세한 그를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찾아간 인연은 어디서 왔을까. 눈물 나도록 그가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일찍 문학의 길에 들어섰다면 어쩌면 한 번쯤은 찾아뵙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맑고 순수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 아니 잃어버린 순수를 만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사후에나마 끈이 닿은 것 또한 아름다운 인연의 소치이리라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한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하더니 작가는 갔어도 문학의 향기는 남아 그 향기에 취한 문학도는 설레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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