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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09.10.22 18:47
- 기자명 By. 충청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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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대한의 독립만을 위해 단신으로 죽는 날까지 의로운 전쟁을 이끌어 나갔던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지난 1909년 2월 대륙의 눈보라가 몰아치는 러시아의 허허벌판 크라스키노에서 11명의 동지들과 대한독립의 확고한 의지를 다지는 약지를 끊어 어딘가에 묻고 이토를 처단하는 거사를 단행한다.
1909년 10월 26일 아침, 청명했던 가을 하늘을 가르던 하얼빈의 역사, 무명의 32살 식민지 청년이 쏜 단 세발의 총알이 불을 뿜으며 일본 근대화를 이끌며 총리대신이자 조선합병을 주도했던 거목, 조선을 넘어 대륙으로 나가겠다던 68살의 늙은 도적 이토우히로부미의 야망이 쓰러지며 한 명의 영웅이 탄생했다.
거사 이후 체포되는 순간과 수감돼 러시아의 묵인아래 진행된 11차례의 재판과정을 거쳐 1910년 3월 26일, 비 오는 뤼순의 사형장에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그는 대한의군의 참모중장으로서 당당하게 일본법정을 조롱했고, 최후의 전쟁을 벌이면서도 평온했으며 품위를 잃지 않았다.
국가의 안위는 위태로운데 그에게는 군대가 없었다. 그러나 오직 위국헌신 군인본분으로 백만의 대군보다 더 큰 전쟁을 벌인 안중근. 옥중에서 사형이 선고된 직후부터 작성한 미완의 논문 동양평화론에서 그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도 공존의 정치체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등 대한국인의 투혼을 불살랐다.
대한의 독립과 평화를 갈망하며 구국의 의지 하나로 대한독립을 위해 만천하에 울렸던 ‘까레이우레’만세 소리가 그치지 않고 1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안 의사의 의거가 남긴 교훈과 함께 시간이 지날수록 선홍빛 혈흔과 같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우국의 충정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지표가 되고 역사가 되고 갈라진 마음의 갈등을 하나로 엮는 미래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표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순규/대전지방보훈청 선양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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