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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8월의 독립운동가 김수민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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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8.02 19:09
  • 기자명 By. 장선화 기자
[충청신문=천안] 장선화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개관3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김수민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김수민(金秀敏)은 대표적인 농민의병장이다. 일찍이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여 반일투쟁을 경험했던 김수민은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퇴위와 대한제국군대 해산을 계기로 의병활동에 나섰다.

김수민은 경기 장단・마전 지역을 중심으로 700명의 의병을 지휘해 1907년 10월 고랑포(高浪浦) 헌병분파소를, 11월에는 풍덕군 영비포(領非浦) 헌병분파소를 공격하여 불태웠다.

1908년 초에는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기 위해 13도창의대진소 연합의병에 가담했다. 하지만 서울진공작전이 1908년 2월 좌절된 후 김수민은 의병부대를 이끌고 장단군 방면으로 되돌아와 유격전을 기본 전술로 하는 의병부대로 재구성했다.

그는 1908년 4월 20~30명의 유격대로 구화장(九化場) 헌병분파소를 공격했으며, 10월에는 근거지를 점차 남쪽으로 이동시켜 강화도를 기습 공격하는 등 활발한 의병활동을 전개했다. 큰 피해를 입은 일본군은 1908년 11월 대대적인 의병탄압작전을 펼쳤다.

이로 인해 김수민이 지휘하는 의병활동은 전에 비해 매우 침체되었다.

이에 김수민은 일본군 정세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총기 및 군수품을 구입하는 등 새로운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서울에서 독립운동을 벌인다. 경부(京部) 이화령(梨花寧)과 북부(北部) 제동(齊洞)에 거주하며 인력거꾼(車夫)으로 위장해 활동했다. 이 기간에 김수민은 자신이 지휘하던 의병세력을 동생이자 선봉장이었던 김백수(金白洙)에게 담당케 한다.

그러나 활동상황이 일경에 포착돼 김수민은 1909년 8월 12일 오후 1시 부하 2명과 함께 붙잡히고 만다. 체포 후 서대문 감옥에 수감되었고 1909년 10월 14일 교수형을 선고받고 동년 12월 17일 순국했다.

정부는 김수민의 공적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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