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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高祖) 광무제가 쓴 통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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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0.05.12 20:45
  • 기자명 By. 뉴스관리자 기자
즉위식, 종묘제례, 가례(嘉禮)에 입는 대례복(大禮服)인 면복(冕服)에 쓰는 면류관(冕旒冠)은 곤복(袞服)과 함께 착용했으며 황제는 12장복, 황태자와 조선 국왕은 9장복, 왕세자는 7장복을 입었다. 폭이 7치, 길이 1자 2치의 전원후방(前圓後方)의 평천판(平天板)에 앞 4치, 뒤 3치의 수류(垂旒)를 달고 면관의 좌우 양옆 귀쪽에 주광과 옥진)을 늘어뜨리고 굉(紘)과 담으로 장식돼 있다.

면류관은 사각형의 천판에 옥구슬을 매단 관이며 국왕은 구류면(九旒冕)이고 왕세자는 팔류면(八旒冕)이었으나 광무 원년(1897년) 고조(高祖)가 1대 광무제에 등극하고 십이류면(十二旒冕)이 됐고 황태자관은 구류면(九旒冕)이 됐다.

곤복(袞服)은 중단(中單),의(衣), 상(裳)을 입고 대대(大帶), 폐슬(蔽膝), 옥대(玉帶), 패옥(佩玉), 방심곡령(方心曲領), 후수(後綬), 말(襪), 석, 옥규(玉圭)를 착용했다.

중단(中單)은 겉옷 안에 입는 옷인데 두루마기와 형태가 비슷하지만 소매가 넓으며 깃에는 불문이 금박돼 있다. 의(衣)는 저고리, 상(裳)은 치마, 대대(大帶)는 허리띠와 비슷한 것이다. 폐슬(蔽膝)은 허리부터 무릎 아래에 드리우는 사각형의 천이며 장문(章紋)이 수놓아져 있으며 옥대(玉帶)는 품대로 허리에 두르는 사각형의 띠로 신분을 나타낸다.

패옥(佩玉)은 허리에서 양 옆으로 늘어뜨리는 옥 장식이며 움직일 때마다 아름다운 소리가 나며 방심곡령은 둥근 고리 모양에 사각형이 매달려 있는 형태로 가슴에 늘어뜨린 것이다. 후수(後綬)는 허리에서 뒤쪽에 늘어뜨리는 띠이며 품계에 따라 문양이 다르며 말(襪)은 버선을 말하며 석은 신발을 말하고 옥규(玉圭)는 손에 드는 옥판인데 위는 삼각형 모양이고 아래는 네모지다.

조복(朝服)은 국왕과 문무백관들이 설날, 동짓날의 하례, 의식에 착용하던 예복이며 국왕은 원유관을 쓰고 강사포(絳紗袍)를 입었는데 원유관(遠遊冠)은 회색의 나(羅)로 만든 구량(九梁)에 금잠(金簪)을 꽂았고 황(黃), 창(蒼), 백(白), 주(朱), 흑(黑)의 차례로 5가지 색의 옥(玉)으로 전후 9개씩 18개의 옥을 장식했고 양 옆에 있는 2줄의 붉은색 끈을 턱밑에서 매고 나머지는 늘어뜨렸다.

대한제국 황태자 및 조선 국왕, 왕세자의 상복(常服) 곤룡포(袞龍袍)에 목화를 신었으며 곤룡포(袞龍袍)와 함께 쓰는 익선관(翼善冠)은 면류관(冕旒冠)의 평천판의 옷감과 같은 검은 사(紗)로 덮혀 있고 관 뒤에는 양각(兩角)이 위로 향해 솟아 있다.

조선 왕세자가 관례 전 대례복으로 착용한 자룡포(紫龍袍)는 자주색 도류단에 붉은색 안을 넣어 만들었고 양 어깨에는 사조용보(四爪龍補)를 달았으며 자룡포에 공정책을 쓰고 옥대(玉帶)를 띠며 흑색 녹피화를 신었다.

네 폭으로 갈라진 옷이라는 의미의 사규삼(四揆衫)은 동자가 관례(冠禮) 전에 입는 상복(常服)으로 소매가 넓고 깃이 곧으며 양 옆의 겨드랑이를 튼 포(袍)이다. 쾌자(快子)라고도 하는 전복(戰服)은 홑겹의 남색 목단문사(牧丹紋紗)로 지은 것으로 허리에는 홍색 세조대(細條帶)를 띠어 남색과 홍색이 조화를 이뤘다. 소매와 섶이 없으며 여미는 매듭단추 2개가 없어지고 오른쪽에 단추를 여밀수 있는 끈고리 2개만 남아 있다.

대한제국 황제, 황태자 및 조선 국왕, 왕세자의 용포(龍袍)에 다는 보(補)는 가슴과 등, 양 어깨에 붙였는데 보(補)의 무늬는 용(龍)이며 자색(紫色)의 비단으로 원형으로 만들었으며 지름은 18cm였다.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용의 형상을 금실로 수놓았으며 여기에 구름을 수놓았는데 대한제국 황태자, 조선 국왕의 보(補)는 5조룡(五爪龍)이고, 왕세자의 보(補)는 4조룡(四爪龍)이다.

1897년 고조(高祖)가 대한제국 1대 광무제에 등극하면서 조하(朝賀)를 받을 때 입는 강사포(絳紗袍)와 함께 쓴 통천관(通天冠)은 오사모(烏紗帽)의 앞뒤에 각각 12량이 있고 청·황·홍·흑·백색의 오방색 구슬 12개를 꿰었고 옥으로 된 비녀와 홍색 조영(組纓)을 달았다. 조선의 국왕은 9량의 원유관(遠遊冠)을 썼지만 광무 원년부터 통천관(通天冠)으로 바뀌었다.

포(袍)는 붉은 강사(絳紗) 또는 홍단(紅緞)으로 만들었는데 깃,도련, 소매 끝에 붉은색 선을 두르며 중단(中單)은 백초(白稍),백라(白羅), 백사(百秒)의 비단으로 하며 붉은 색 깃에 불문을 그린다. 폐슬(蔽膝), 대대(大帶), 패옥(佩玉), 후수(後綬),옥규(玉圭), 방심곡령(方心曲領) 등은 면복(冕服)과 동일하며 말(襪)은 흰색, 석은 흑색이다.

김민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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