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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소중한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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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10.29 16:0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수필가
이혜숙수필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종일 기분이 나빠지는 늦잠꾸러기.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절대 일찍 일어나지 않는 저녁형 인간. 새벽부터 녀석들 뛰는 소리에 잠을 설치고 일어났다. 녀석들 때문에 늦잠을 자던 나는 아침형 인간인 것처럼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조용히 하라며 소리쳐도 잠시뿐 개구쟁이의 행동은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단출하던 집에 갑자기 식구가 늘었다. 아침저녁으로만 밥을 달라던 녀석이 점심때가 되어도 창문을 떠나지 않고 밥을 달란다.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해도 푹 꺼진 배를 보이며 보챈다. 시끄러워 밥을 주면서 한 소리 했다. 새끼를 낳았으면 보여주든지 어째서 염치없이 밥만 달라고 하냐고.

다음날 아침 야옹소리가 가냘프게 들려서 밖을 보니 내 손바닥보다도 작은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너무 귀여워서 안아주고 사진도 찍었다. 새끼를 빼앗길까 걱정할 어미를 생각해서 내려놓았더니 어디로 갔는지 새끼는 보이지 않았다.

전에도 몇 번 새끼들을 낳았다. 어느 순간 한 마리도 보이질 않아 이번에도 다 잘 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내 걱정이 기우라는 듯 며칠 후 고물거리는 새끼 네 마리를 데리고 나타났다. 귀엽긴 한데 사람소리만 들리면 도망가고 곁을 주지 않는 것이 제 엄마하고 같다. 의리 없는 녀석들이라고 푸념을 하면서도 너무 귀여워 간식을 자주 챙겨주게 된다.

오 년 전, 우리 집에 찾아들었던 고양이 다섯 마리 중에 모녀 고양이 둘만 살아남았다. 제 집처럼 드나들며 창문 앞에 턱을 고이고 밥 달라고 야옹거리던 녀석들이다. 둘이 배가 불룩하게 나타났다. 비슷한 시기에 둘 다 출산을 했다. 어미 고양이는 발코니로 새끼 네 마리를 데리고 나타났고 딸 고양이는 집 뒤 장작더미 사이에서 세 마리의 새끼와 나타났다. 

어미 고양이의 새끼들은 절대로 뒤편으로 가지 않았고 딸 고양이의 새끼들도 앞으로 오지 않았다.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그들만의 규칙인가 보다. 야생에서 살면서도 그들 나름의 규칙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서로를 위해 영역을 지키는 녀석들에게 아침에 일어나 하는 일이 앞, 뒤로 다니며 밥을 주는 일이다. 고양이는 2~3개월만 어미젖을 먹는다는데 이 녀석들은 3개월이 넘어도 아직까지도 어미젖을 찾는다. 밥은 밥대로 먹으면서도 젖을 먹고 있는 녀석들 땜에 어미는 늘 배가 고픈 것 같다. 할 수 없이 사료까지 사다가 주었다.

길 고양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새끼 못 낳는 수술을 한다고 해서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누구한테 물렸는지 새끼 한 마리의 귀 반쪽이 떨어져 나갔다. 약이라도 발라주려고 가까이 가면 달아나서 결국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냉정한 동물의 세계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

딸의 새끼들이 아픈 지 비틀거린다. 약을 발라주고 먹이를 주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뒷마당을 뛰어다니며 장난치던 녀석들은 한 마리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다른 짐승에게 공격을 당한 것 같다. 어미 고양이의 새끼들도 한 마리씩 사라졌다. 주변을 살펴보아도 사체는 찾을 수가 없다. 귀 잘린 새끼하고 처음으로 나에게 데려온 녀석만 목숨을 부지했다. 발코니에 아이스박스를 놓고 옷을 넣어주었더니 자기 집인 줄 아는지 그곳에 들어가 잤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사람과 가까이해서일까. 그 두 녀석은 내 앞에서 제법 재롱을 부린다.

길 고양이들 수가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그만큼 야생의 동물들은 생존율이 높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이 녀석들은 전에 낳은 새끼들도 한 마리도 못 살더니 지금 낳은 새끼들도 일곱 마리 중 두 마리만 살아남았는지.

요즘은 반려견과 반려묘를 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반면 유기되는 반려동물도 많다고 한다. 길고양이라도 내 집에 와서 둥지를 트니 살피게 되는데 어떻게 사랑을 주고 기르던 동물을 버릴 수 있을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서 삼 개월이 넘도록 젖을 물리는 것을 보니 자식사랑은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명절에 더 많은 유기동물이 발견된다 한다. 고향 가는 길 휴게소에 버린다거나 저 멀리 섬에다 버리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주인을 기다리느라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달리는 차마다 쫒아가는 유기견을 보면서 인간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세상은 사람만 존재하지 않는다. 예쁘다고 기르다가 힘들고 귀찮다고 버린다면 애초부터 키우지 않는 편이 동물을 위해나 사람을 위해서 좋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사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다. 장난감처럼 좋을 때 옆에 두었다가 싫어지면 버리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지 말고 소중한 생명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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