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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양심적 병역거부의 기원과 종교적 병역거부

이노신 호서대 인문융합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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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1.24 16:0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는 국제적인 공인용어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부자연스럽다. 대한민국의 여느 남성들처럼 필자도 현역 군복무를 마친 후에도 동원예비군과 일반예비군, 민방위까지 모두 완료하여 병역의무를 마쳤다. 그러나 만일 우리나라에 전쟁이 발생한다면, 다시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가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국가의 승리를 위하여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있다. 사실 마음만 20대이고 오랫동안 깨알 같은 글씨를 접한 나머지 난시에 노안까지 와 버린 이 나이에 총을 잡으면 오히려 민폐가 될 수도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서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되기도 한다. 눈을 제외하고는 신체의 다른 부분은 건강하니 전시에 눈마저 과거 1.5의 시력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징병제 국가이다. 건강한 남성이라면 병역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 정상이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부터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일제침탈, 6.25동란과 같이 줄기차게 외침으로 시달렸던 우리민족에게 강한 군사력 유지는 가장 막중한 과제이다. 이민족에 의한 이러한 침략은 ‘떼놈은 참빗, 왜놈은 얼레빗’, ‘후레자식’, ‘화냥년’, ‘골로 간다’, ‘양공주’, ‘부대찌개’ 등과 같은 새로운 말과 문화를 만들어 낼 정도로 우리 역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힘 약한 국민들이 한반도로 들어온 중국군과 일본군들에게 온갖 수탈을 당하고 목숨조차 빼앗겼던 상황, 이들에게 여인들이 강간당해서 낳은 아이들, 청나라 군대에 끌려가 성노예로 살다 환향한 수만 명의 여인들, 6.25때 골짜기로 끌려가 억울하게 총살당한 사람들, 먹고살기 위해 외국인들에게 몸을 파는 여인들, 미군들이 먹다 버린 음식에 고춧가루와 양념을 풀어서 끓여 낸 찌개가 바로 이런 표현들의 기원이다.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는 서양인들이 만들었다. 따라서 우리민족이 그동안 경험해 왔던 수난의 역사를 전혀 담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필자와 같이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양심이 없기 때문에 그랬나?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우리나라가 과거와 현재에 처한 상황을 무시한 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은 많은 무리가 있다. 최근 정부에서도 이것 대신에 종교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서양의 군사제도는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병제와 용병제를 바탕으로 한다. 즉 모병제는 스스로 자원한 자국민들을 군인으로 고용하는 직업군인제도인데, 자원자가 없는 경우 병력이 부족해진다. 이런 모병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외국인들을 군인으로 고용하여 자국의 방위를 맡기는 용병제를 전통적으로 운용해 왔다. 서양에서 이러한 모병제와 용병제 혼용제도의 역사는 2천년이 넘는다. 

모병제와 용병제는 국가에 의한 강제 징집이 배제되며 각자 개인 스스로의 자유로운 의사를 기반으로 유지된다. 특히 용병제의 경우는 커다란 특전을 제공하기도 한다. 로마제국이후부터 용병제를 운용하는 서양의 여러 선진국들은 외국인들에게 높은 급여를 지급하며 일정기간 동안 용병으로 복무하면 시민권을 부여함으로써 이들의 충성심을 이끌어 내었다. 현재에도 프랑스의 특수 외인부대나 영국의 구르카 용병들은 그 명성이 자자하다. 미군 또한 외국인들을 일정하게 군인 또는 군무원으로 고용하고 있으며, 일정 기간 복무하면 영주권 또는 시민권을 부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전체로 볼 때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자국민으로 구성된 군대를 유지하며, 외국인 용병들은 소수의 비율을 넘지 못하게 조절하고 있다. 

역사를 들춰보면 용병에게 국가방위를 주로 맡긴 경우 오히려 용병에 의해 나라가 절단 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천년 제국이라는 로마제국이나 중국의 찬란한 실크로드 문화를 이룩했던 당나라 제국 같은 경우도 외인 용병들에 의해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많은 장수와 군인이 자국민이 아닌 외인 용병들로 구성되다 보니, 자신들의 막강한 군사력을 이용하여 방위보다는 고용국가의 재물과 이권취득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리고 결국 때가 이르자 고용주를 거꾸로 집어 삼킨 것이다. 로마를 멸망시킨 용병대장 오도아케르나 당나라를 무너뜨린 장군 안록산이 모두 외국인이다. 중국 한족이 아닌 이란계 외국인이었던 안록산은 자신보다 열 살 어린 양귀비에게 접근한 뒤 그녀의 양아들이자 애인이 되어 중앙 권력을 휘두르다 반란을 일으켜 당 제국을 붕괴시켰다. 

만약 우리나라도 모병제로 전환하여 국민들 중 자원자만으로 구성된 직업군인제도를 운용한다면 서양 여러 국가들이 이미 경험한 군 병력의 부족에 당면할 수 있다. 그러면 부족한 병력을 보완하기 위해 서양처럼 네팔, 우간다, 콩고, 짐바브웨, 수단,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몽골, 베트남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을 다국적 용병으로 고용하여 일정기간 동안 복무하면 이들에게 대한민국 시민권을 부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국민들의 정서와 맞을지 회의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병제가 시행되면 군대에 가고 안 가고는 전적으로 자신의 의사결정에 달려있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군인이 되는 것이 자신의 양심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군대에 자원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누구도 그것 때문에 군대 안간 사람을 비난하거나 감옥에 쳐 넣어 전과자로 만들 수 없다. 즉 이런 모병제와 용병제 속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도 매우 평범하며 부담 없는 선택사항 중 하나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엄연히 모병제+용병제가 아닌 징병제 국가이다. 중국, 일본, 러시아와 같은 군사강국들과 인접해 있으며, 외세에 의한 갖은 수탈과 남북분단의 아픔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건강한 대한민국의 남성들이 비양심적이어서 군대를 가는 것이 아니다. 다시는 그런 침탈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국가의 징집요구에 응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역사적 아픔과 현재의 병역제도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양심적 병역거부 보다는 종교적 병역거부라는 표현이 우리나라에서는 더 적절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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